Serienz의 모두가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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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을 안 마신 건 아닌데, 트라피체 싱글 빈야드 핀카 라스 이후로 간만에 작성하는 포스팅이네요. 부지런히 써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_+



첫 번째 와인은 도멘 샹동 브뤼(Domaine Chandon Brut) 입니다.


마시기 전에 양치를 한 감이 남아있어서 그랬는지, 향에서는 그리 강하지 않았는데 입 안에서는 라임맛이 춤을 춥니다. 라임 제스트를 한 스푼 머금은 듯한 느낌. 잠시 시간이 지나니 서서히 요거트 같은 살풋한 유질감이 느껴지는데, 라임맛과 잘 어우러들어서 기분 좋게 넘어갑니다.


이어서 라임에 가려져 있던 단맛이 살금살금 올라오는데, 이쯤 되니... 분명 눈으로 볼 때는 기포가 상당히 가늘게 올라왔었음에도 입 안과 목 깊은 데에서부터는 투박한 탄산감에 살짝 아쉬운 마음이 드네요. 샹동이라는 이름은 달고 있지만 떼루아의 한계인 걸지, 아니면 전작으로 맥주를 마시고 왔어서 그렇게 느꼈던 건지 모르겠지만 한번 다시 마셔보고 싶었습니다.



두 번째 와인은 헤지스 패밀리 이스테이트, 레드 마운틴 워싱턴 스테이트 2004 빈티지(Hedges Family Estate, Red Mountain Washington State 2004) 입니다.


레이블 전면에 블렌딩 비율을 적어두었는데요, 카버네 쇼비뇽 33%, 멀롯 62%, 카버네 프랑 3%, 프티 베르도 2%입니다. 멀롯이 많이 들어간 블렌딩이라 이날 협찬으로 샤또 몽로즈를 생각했었는데... 2010 빈티지라서 아직 시음적기가 되려면 한참 남았다는 생각에 제외했었습니다. 와인서쳐에서 알려주는 시음적기는 2020년부터 시작하더라고요.


아로마에서도 보랏빛 빌로드, 스월링한 후에는 좀더 깊고 진하며 두툼한 빌로드가 연상됩니다. 살짝 초콜릿 뉘앙스도 함께 올라왔고요. 그렇지만 마구 무겁다거나, 뭉툭하다는 느낌은 아니며 오히려 금방 날카로워지는 스타일입니다. 미국 와인이라서 생각했던 것보다 날카로워진다는 것이지 그렇다고 마구 튀어오르는 정도는 아니고요.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플라스틱 공산품 중에 가끔 특유의 향이 있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느낌도 받았습니다. 일부러 향을 넣거나 한 건 아니지만 가끔 어떤 플라스틱에서는 꽃 같달까? 싶은 향기가 나거든요.


잠시 기다리니, 왜인지 모르게 바닷바람, 해산물(생선은 아니고 조개류)이 연상되는 새초롬한 향이 뒤이어 올라옵니다. 분명 레드 와인인데 바다향기가 스며들어있는 게 신기했네요.


변화를 보여주던 향과 다르게, 입 안에서는 세상 부드러운 뉘앙스입니다. 과일과 한천과 우유를 적당한 비율로 배합하여, 과일의 까슬한 텍스쳐도 우유의 비릿한 텍스쳐도 없이 술술 넘어가는 젤리 같다고 할까요. 그러면서도 허브향이 살살 어우러드는 게 꽤나 좋았습니다. 적당히 불량식품 같은, 덜 고급진 새콤달콤 포도맛이라고 해야 할까요^^


어느 정도 마신 다음에는 타닌감이 살금살금 올라와서, 조금 더 묵혔으면 더 괜찮았으려나 싶었습니다.



세 번째 와인은 샤또 도작 1997 빈티지(Chateau Dauzac 1997) 입니다.


잔을 받자마자, 부엽토가 폭신폭신 깔리고 나무가 울창하니 우거진 숲을 여우 한 마리가 지나가듯... 낙엽향, 부엽토향, 여우나 늑대와 같은 미묘한 노린내가 함께 어우러듭니다. 묘하게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느낌이 있어요. 적당히 꼬릿하고 달큰달큰한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시골 장독대 뚜껑을 막 열었을 때 올라오는 새큼달큰하면서 텁텁한, 그러면서 자연스레 맛이 기대가 되는 그런 향기. 화덕, 그리고 부엌, 묘하게 따스한 뉘앙스의 가정이 연상됩니다.


입 안에서는 분명 안 부드러운 건 아닌데, 한층 올라간 음색을 보여줍니다. 와인이 높다 낮다가 아니라, 직전에 마신 헤지스 패밀리 레드 마운틴에 비해서 음색이 다른. 앞서가 피아노의 기본 도 였다면 한 옥타브 반쯤 올라간 느낌. 산미가 살아있고, 그러면서도 과하지 않게 타닌과 조화를 이룹니다. 


시간을 두고 마시면 뒷심이 강하진 않고, 뒤로 갈수록 타닌감과 산미가 서서히 이별을 하니 어느 정도 타이밍에 잔을 비우는 것도 좋을 듯했습니다.



네 번째 와인은 몬테스 알파 엠 1997 빈티지 (Montes Alpha M 1997) 입니다.


유칼립투스가 바로 연상됩니다. 쭉쭉 기운차게 벋은 하얀 나무와 약간 검푸른 이파리, 그리고 허브향이 뿜뿜. 타닌감도 쨍글하니 싱싱하다는 느낌마저 줍니다. 하지만 미묘한 공산품의 느낌? 아까 헤지스 패밀리 레드 마운틴에서도 느꼈던 그 느낌이 살짝 같이 있네요. 오히려 허브향을 떼어놓고 본다면 굉장히 묵지근하게 코를 때리는 듯합니다.


반면 입에서는 그야말로 새콤달콤. 하지만 조금 더 새콤에 무게를 두어도 되겠습니다. 향에서의 공산품 느낌은 한 모금 마신 뒤에는 조금 더 확실하게 느껴지는데, 갓 출고한 차량의 카시트에서 올라오는 인조가죽 냄새? 같은 인공적인 향이 있네요.


첫 맛은 새콤하지만 뒤로 갈수록 달달해지는 느낌. 나쁘진 않았습니다만 의외로 음식이랑 마리아주하기엔 조금 어렵지 않을려나 싶었습니다. 레드 와인에 맞는다고 말하는 음식이면 거의 다 맞겠지만, 마치 [다 잘하긴 하는데 100점은 없고 다 80~90점대인 고만고만한 점수] 를 받는 학생이라고 할까요.



다섯 번째 와인은 끌로 뒤 발 1996 빈티지 (Clos Du Val 1996) 입니다.


뭔가 애매한 향기와 애매한 뉘앙스입니다. 굳이 향의 위치를 두자면 헤지스 패밀리 레드 마운틴과 샤또 도작 사이의 어딘가 같은 느낌. 이리저리 헤메던 핸들은 결국 프랑스를 향해 방향을 잡지만, 뒤에 살금살금 따라오는 단맛은 미국이야 미국! 이라고 속삭이는 듯했습니다.


입 안에서도 향과 마찬가지. 의외로 입에서는 조금 더 제 취향에 맞았습니다. 카버네 쇼비뇽 단일 품종이 가져다주는 강건하고 단단한 느낌도 살아 있었고, 사실 치우치려고 한다면 금방 달달하게 넘어갈 수도 있었겠지만 뚝심 있게 구조감을 가져가는 모습도 괜찮았어요. 그러면서도 타닌은 충분히 풀어져서 부드럽게 혀랑 목을 타고 넘어갔고요. 


하지만 뭔가 이거다 싶은 임팩트에서는 살짝 아쉬웠습니다. 그래서 이날 마신 레드 와인 중 제 마음속의 1등은 샤또 도작이 차지했다는 거 +_+ 물론 이쯤 되면 제가 슬슬 취해서 맛을 모르기 시작했다고 봐도 될 거 같습니다.



여섯 번째 와인은 샤를 엘르너 프레스티지 브뤼 2006 빈티지 (Charles Ellner Prestige Brut 2006) 입니다.


가장 마지막에 마셨고, 그러는 동안 냉장 보관을 요청드렸음에도 충분히 칠링이 되지 않아서... 조금 더 칠링한 다음 나눠 마셨는데요, 맨 처음 마신 모엣보다는 확연히 부드러운 기포감에 조금 더 복잡한 텍스쳐를 가지고 있긴 합니다만 이거다! 싶은 임팩트는 없었습니다. 제가 사놓고도 구입가가 얼마였는지 기억은 잘 나지 않는데, 빈티지가 있는 샴페인임에도 그리 높은 가격은 아니지 않았을까 싶네요. 


조금 더 부드럽고, 도멘 샹동이 라임이었다면 샤를 엘르너는 청사과의 뉘앙스가 확연했으며, 산뜻한 유질감에 뒤이은 곡물류의 고소함이 살짝 느껴지지만 딱 거기까지였던 기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