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ienz의 모두가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

336x280(권장), 300x250(권장), 250x250, 200x200 크기의 광고 코드만 넣을 수 있습니다.

와인을 마신 당일은 취하진 않았어도 마음이 차분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 다음 날인 일요일을 지나, 월요일에... 사랑할 수밖에 없는 부르고뉴 피노 누아와 함께하면서 남기는 이번의 와인모임 후기. (지금 마시고 있는 와인에 대한 이야기도 얼른 올릴 예정입니다.)


어쩐지 블로그의 말투가 점점 반말체가 되어가는 중이라, 혹시라도 보시는 분들께는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드려봅니다. 아마 이 문장이 이 포스팅의 마지막 존칭이지 않을까 싶네요.


이번에 마신 와인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 문장도 존칭이네요! ㅎㅎ)



첫 번째 와인은 떼땡져 리저브 브륏 (Taittinger Reserve Brut) 이다.


약간 높은 온도감이 아쉬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량감, 미세한 곡물감이 올라온다. 그러면서 함미와 산미가 동시에 느껴지는, 괜찮은 구조감. 입에서는 시트러스한 느낌, 뭐라고 할까.. 귤과 자몽의 과피에 가까운 느낌이라고나 할까. 산도가 쨍글하니 올라가면서, 마치 피타고라스라도 된 양 머릿속에는 한 변의 기울기가 75。인 삼각형이 떠오른다. 참 우스운 일이지. 반으로 나누면 한 쪽이 75。의 각도를 갖는 직각삼각형도 과연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따를까? 라는 희한한 물음표를 만드는 맛이다.


하지만 그러한 뉘앙스의 지속력은 꽝. 물론 엔트리 급이니까 그러려니 하지만서도 점점 산도가 치밀어오르면서 입 안에서 과일껍질의 텁텁함 (아마 포도를 껍질 벗기지 않고 그대로 씹어본 분이면 아실 거다) 까지 올라온다. 



두 번째 와인은 앙리 지로 에스프리 나뚜르 브륏 (Henri Giraud, Esprit Nature Brut) 이다.


떼땡져와 굉장히 유사한 첫 뉘앙스는, 역시 칠링이 덜 되어서 그런 것일 게다. 오픈하면서 푸 드 센 이야기가 나와서 그런 것일지는 몰라도 왜인지 모르게 떼땡져보다 더 좋은 구조감, 산미와 함미가 적당히 어우러드는 뉘앙스를 받았고 조금 더 '건조한' 곡물감이 다가온다. 떼땡져에서 적당히 잘 지은 현미밥의 느낌이었다면 에스프리에서는 잘 튀긴 뻥튀기 같다고나 할까.


하지만 입에서는 전혀 다른 모습. 산미감이 있는대로 올라오면서 일부 오렌지 와인, 내추럴 와인들에서 느끼던 그 감각... 적당히 지르밟힌 과실에서 공기 중으로 토해내는 단말마와 같은 에탄올과 같은 그것까지 춤춘다. 떼땡져가 시트러스의 뉘앙스였다면 에스프리는 패션후르츠에 가깝다고나 할까.


특이한 점은, 떼땡져에서는 과일로서 갖는 최소한의 당미가 있었지만 에스프리에서는 그마저도 절제한 듯 굉장히 빠져있는 당미(이게 되게 역설적이다. 당미가 없어서 오히려 당미의 부재가 느껴지는 그러한 상황)가 느껴졌다. 마치 과일향을 더한 탄산수처럼 당미의 부재가 올라온달까.



세 번째 와인은 크리스탈 2012 빈티지 (Louis Roederer Cristal 2012) 이다.


예전에 협찬으로 들고다녔던 크리스탈 2008 이후 빈티지로는 처음 마시는 빈티지이다. 확연히 엷은 색상. 그러나 앞의 두 샴페인과 비교해서는 너무나도 다르게 이어지는 길고 긴 노즈. 아, 여기서부터는 샴페인의 '格' 이 달라지는구나. 라고 무의식적으로 느낄 만한 차이이다. (사실 이 정도의 차이가 없다면 루이 뢰더러가 반성해야 할 일이긴 하다. 가격 차이로 대강 계산해도 벤츠 S클래스랑 롤스로이스 던 정도 차이는 나올 걸?)


은근하게 풍겨오는 요거트 향. 요거트는 플레인이 아니고 바나나와 바닐라가 모두 섞여 있다. 그러나 빈티지의 차이는 어쩔 수 없는 것이, 굉장히 가볍고 또 아쉽다. 이 날 같이 마시려고 고민했던 와인이 볼랭져 11빈티지였는데 붙였더라면 어땠을까? 마셔보진 않았지만 볼랭져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왜냐? 크리스탈에서 볼랭져 화이트 포일 정도의 느낌이었으니까. (물론 약간 더 복합미가 올라오긴 했지만... 볼랭져 화이트 포일 가격을 생각해야지...)


그래도 앞의 두 샴페인보다는 충분히 좋았던지라 약간 놓아두니 점차 이스트향이 올라오긴 했다. 특유의 꼬순내. 돔 페리뇽에서의 대놓고 나는 번이요! 조금 더 가면 나는 모카번이요! 나는 쿠키요! 라는 정도는 아니지만 명확한 이스트함이 감돌긴 한다. 그걸 방해하는 것이 뜬금없게도 석유 / 에탄올 풍의 뉘앙스이긴 하지만. 약간 비오니에인가? 리슬링인가 싶을 정도의 페트롤 향이 있다. 마이너스 요인. 이정도면 크리스탈 12빈은 병숙성을 해도 여기까지가 한계인 것이 아닌가 싶지만 속단은 금물이니 한두번 더 마셔볼 듯하다.



네 번째 와인은 말도나도 파 빈야드 샤도네이 2016 빈티지 (Maldonado Parr Vineyard Chardonnay 2016) 이다.


미국 샤도네이 특유의 꼬순내, 마치 방앗간에서 참기름을 뽑는 듯한 고소한 향미가 감돌지만 아주 의외인 것은 그 고소함을 산미가 케어하고 있다는 것. 말도나도 와이너리는 나파밸리에서도 가장 남쪽이라 할 수 있는 카르넬로스보다 더 남쪽에 와이너리가 있는데도 이렇게 만든다고? 싶었느데 아니나다를까. 파 빈야드 (Parr Vineyard)는 나이츠 밸리(Knight Varrey)에 있다고 하는데 나이츠 밸리는 지난 2017년 나파밸리에 방문하였을 때 들른 식당에서 마셨던, 너무나도 맛있는 화이트와인을 제공하였던 바로 그 지역 되겠다. 괜히 콩스가드에 포도를 대던 곳이 아니라는 이야기이겠지.


엄청난 구조감을 보여주지만, 동시에 아직 영빈이라 그런지 그 구조감이 오래 못 간다. 그럼에도 오베르를 마실래 이걸 마실래? 라고 한다면 가성비로는 무조건 말도나도를 고를 거다. (이게 오베르 와이너리 투어 거절당해서 이러는 거는.. 사실 맞다. 위에 말한 그 너무나도 맛있는 화이트와인이, 하필이면 그날 먹은 점심 때 즐긴 와인이었을 거거든. 몹쓸 기억력!)


희한하게도 떠오르는 이미지는 핑크 프린세스. 최근 온라인에서 떠오르는 안 좋은 이미지로의 그것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 세상물정 모르는 핑크 프린세스가 연상된다.


하지만 잠시 놓아두니 금방 올라오는 진득한 고소함. 혹자는 뫼르소의 그것이라고 여길 수도 있고, 사실 어지간한 뫼르소 / 퓔리니 몽라쉐보다는 맛있다(!) 다만 놀라운 점은 향에서는 좋게 봐줘야 10대 중반의 소녀소녀한 감성인데 입 안에서는 20대 중후반의 원숙미를 보인다는 것? (대강... 중학교 3학년과 취업을 앞둔 취준생이 각각 즉석떡볶이 가게에서 보여주는 텐션의 차이라고 해 두자. 그래도 궁금하다면 그냥 사서 드셔보시길...)


향미에서 잣? 혹은 밤? 의 느낌이다가 입에서는 귤? 을 거쳐서 파인애플을 스친 다음 패션후르츠로 넘어가는 맛이라고 하겠다.



다섯 번째 와인은 도멘 앙리 노댕 라두와 프르미에 크뤼 라 코르베 2010 빈티지 (Domaine Henri Naudin Ladoix 1er Cru La Corvee 2010) 이다.


이 와인을 받을 때, 굉장한 튀김 냄새가 있었어서 시음에 어려움이 있었다는 점을 먼저 밝히는 바이다. (장소는 좋았지만 아마 인원이 많다 보니 렌지후드로 커버가 안 되었을 거다.) 


첫 느낌은, 그래도 10년 지난 와인인데도 어리다는 느낌이었다. 너무 어리고 또 가벼운 느낌이 아쉬워서, 보졸레 그랑 크뤼 같을 지경이었다. 차마 보졸레 누보 같다고 말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품종을 가메로 헷갈릴 거 같은 느낌임에야... 치킨 튀기는 냄새 때문에 못 느꼈던 탓이라고 하고 지나가야 할 듯하지만, 입 안에서조차도 가없이 가벼운 캐릭터였던 점은 아쉬울 따름이다.



여섯 번째 와인은 라 스피네타 부르수 비네토 깜뻬 2007 빈티지 (La Spineta Vursu Barolo Vigneto Campe 2007) 이다.


첫 노즈느 굉장히 어린 바롤로, 심지어 지디 바이라에서의 그 느낌이다. (아마 지디 바이라도 깜뻬가 있을 거다.). 하지만 그 느낌은 상대적으로 좋은 잔이 아니었음에도 금방 가라앉고 순식간에 가야 바롤로의 뉘앙스로 넘어간다. 어리지만 동시에 굉장히 모던한 느낌. 태생은 이탈리아 남자이지만 가볍게 윙크를 던지는 것이 아닌 14행을 맞춘 소네트를 읊어주며 마음을 사로잡는 남자라고나 할까. 기묘하다. 감히 부를 수 있다면 뇌섹남이라 하겠다.


마시기 아쉬워 마지막까지 남기면서 느낀 향미로는 송아지 가죽 향부터, 의외로(!) 남성용 작은 가방 같은 느낌, 잘 만든 조선간장, 금속질의 산미(비릿한 피비린내에서 연상되는 철분감과는 다른 뉘앙스의 철분감), 철제 대문을 정원사의 손길 아래 단정하게 감싸고 있는 담쟁이덩굴과 이에 어우러드는 건물, 건포도와 통 후추, 그러면서도 끝까지 녹아들지 않고 (무려 3시간을 병 브리딩 하였음에도!) 남아있던 타닌감으로 이어진다.


협찬으로 가져와서가 아닌, 이 날의 진정한 원픽을 꼽으라면 이 와인을 고를 듯.

 


일곱 번째 와인은 샤또 오 브리옹 2007 빈티지 (Chateau Haut-Brion 2007) 이다.


일전 96, 97, 98 빈티지 모두를 마셔보았고 마실 때마다 참으로 좋았던 와인인데... 오늘은 너무나도 아쉬웠다. 97이랑 비교하자면 단 10년 차이인데 이 정도일까. 늘 마실 때마다 오브리옹은 하이얀, 가없이 하이얗고 자그마한 꽃송이들을 가득 수놓은 드레스를 입은 채 머리에는 같은 꽃 왕관을 쓰고, 팔에는 같은 꽃 팔찌를 한 채로 두 팔을 활짝 펼치며 빙글빙글 도는 채 올려다보는 소녀였는데...


잔 두 개를 이용하여 이리저리 디캔팅 아닌 디캔팅을 해 보아도 그 모습은 간 데없이, 단단하고 튼튼하게 가로막은 대문은 미묘한 허브향, 부추와도 같은 뻗대는 향기만 풍긴 채 아쉬움을 남긴다.



여덟 번째 와인은 씨 네 쿼넌 젠틀맨 쉬라 (Sine Qua Non, Male Syrah 2013) 이다.


기묘할 정도로 비릿함. 검푸른 물속 한 가운데에서 상어의 이빨과, 입 속의 공동을 마주한 느낌이라고나 할까. 여기꺼지 오면서 이미 여러 와인을 마셨고 취할만큼 취했음에도 섬뜩한 느낌, 생명의 위협을 받는것인가 싶을 만큼 청량하고 섬찟한 느낌을 주는 한 순간을 향에서 선사하였다. 뒤이은 것은 사람 높이는 우습게 넘기는 해류가 용솟아 휘몰아치는 검붉은(!) 해류. 해류이면 푸른 빛이어야 할진대 분명 그것은 붉은 기운이었다. 입 안을 바작바작 태우는 CS 위스키와 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잠시 열어둔 이후(차마 입에 바로 넣을 수가 없었다) 마시니 살살 풀려서 (이런 걸 보면 확실히 씨네쿼넌은 얼른얼른 마셔야 하는 와인임에 틀림없다. 마치 블록버스터 영화같다고나 할까. 지금 우리 눈에야 블록버스터이지만 한 10년 지나서 그 기법을 보면 유치하기 이를 데 없는 영화들이 있지 않은가.) 어느덧 군고구마의 껍데기에서 올라오는 씁쓸고소함도 있고. 여기서 더 지나니 (놀라운 건, 그 와중에 마음에 들어서 군고구마 향 이후로도 이 와인을 30분은 놓아두었다는 사실) 다크 초콜릿과 같은 향미도 올라왔다는 것이다.



아홉 번째 와인은 알마비바 2006 빈티지 (Almaviva 2006) 이다.


왜인지 모르게, 혹은 칠레 라는 사전정보가 있어서인지 모르겠으나, 머릿속에 떠오르는 단어는 콜차구아 밸리(Cholchagua Valley). 이유는 아직도 모르겠다.


전형적인 (나쁜 의미가 아니다!) 칠레 와인의 스타일이라고 할까. 혹은 아르헨티나 와인이라 해야 하나. 최근에 마신 트라피체 싱글 빈야드가 떠오르기도 하지만 그것보단 훨씬 부드럽다. 동시에 어쩔 수 없는 유칼립투스라고 해야 할지, 허브라고 해야 할지 모를 이 향기. Herbaceous라고 해야 하려나? 싶기도 하고 Mint 이기도 하고.


잠시 놓아두니 가없이 정글로 잦아든다. 수목한계선 위에서 차분히 가라앉는 뉘앙스. 침염수림에서의 쨍글하고 뾰족한 활기가 느껴지고, 허브와 가죽 이어서 스파이시함을 지나 흙내음까지 가라앉는 변화를 보인다.


이 날의 투픽. (어쩌다 보니 원픽 투픽 다 협찬이다.) 



마지막 와인은 도멘 드 롱보 리브잘트 1960 빈티지 (Domaine de Rombeau Rivesalte 1960) 이다.


색감은 어느 와인에서도 본 적 없는 노르스름함. 향에서는 쉐리 캐스크로 한 30년 숙성시킨 그것, 입에서는 너무나도 가벼운 (이미 향에서, 뇌가 '이건 최소한 30년 숙성시킨 위스키야' 라는 생각을 하고 있으니 20도가 안 되는 이게 이렇게 느껴진 것이지만) 터치. 디저트 와인으로 참 좋은 한 잔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