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ienz의 모두가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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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국적 타파스라는 이름으로 건너건너 들어봤지만 한 번도 가 볼 기회가 없었던 한남동의 릿지828(Ridge 828)에서, 잘 익은 마세토를 즐길 수 있는 자리가 생겨서 다녀왔습니다. 마세토를 능가하는(!) 협찬와인까지 즐겼던 풍요로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



첫 번째 와인은 크루제 블랑 드 블랑 (Cruset Blanc de Blancs) 입니다.


일전 한남동 스트라디움에서 마셨던 스파클링으로, 그 때와 다른 점이라면 충분히 칠링이 되어 있었다는 점이겠네요. 스파클링이라고 하기엔 진한 꿀 향기가 첫 노즈를 보여주는데, 사용한 잔이(Grassl, 그라슬) 림에 아주 살짝 굴곡을 주어 안 쪽으로 말려들어가게 디자인되어 있어서인지 칠링 잘 된 스파클링 와인임에도 갑갑하다? 라는 느낌을 주었습니다. 잘토 잔을 받으신 분도 계셨는데, 전 오히려 이 잔이 더 신기하고 좋은 경험이었네요.


입에서는 노즈와 같은 당미감, 그리고 탄산감/기포감이 과하게 치고 들어옵니다. 혀 위를 바삭바삭바삭. 마시고 나서는 들큰한 텁텁함을 남기는데, 잔당감이 어마합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차분해지면서 탄산감이 줄어드니 그제서야 밸런스가 잡혀가네요. 아울러 바닐라와 패션후르츠 뉘앙스가 혀를 타고 흐릅니다.



두 번째 와인은 벨라비스타 넥타 S.A (Bellavista Nectar S.A) 입니다.


본래 백색 레이블이었고 S.A 는 없었던 기억인데, 레이블이 진한 분홍색으로 변경되면서 S.A 가 붙었네요. 크루제에서와는 다른 장르의 단내, 군고구마와 같은 꼬순내가 피어오릅니다. 


입 안에서의 기포감은 크루제보다 살짝 나은 수준이라서 물음표를 많이 떠올렸지만, 동시에 그 화사함에서는 확연한 차이가 있습니다. 노란 빛, 연두 빛, 하얀 빛의 자잘한 들풀과 들꽃이 이리저리 바람에 치이는 야트막한 구릉. 예전 언젠가 벨라비스타를 마셨던 기억이 분명 있는데, 그 때에도 꽤 괜찮은 기억이었던 느낌입니다.


시간을 두고 마실 수록 곡물의 뉘앙스가 약하게 올라오고, 브리오슈 번의 속살같은 향이 섞여들어오는 그 느낌이 참 좋았습니다...마는, 기묘하게 입 안에 남아서 떠도는 짭짤함이랄지 씁쓸함이랄지는 어디서 유래한 것일까? 싶어지는 순간들이었습니다.



세 번째 와인은 볼랭저 밀레짐 2011 빈티지, 007 에디션 (Bollinger Millesime 2011, 007 Edition) 입니다.


릿지828에 처음 오는 것이기도 하여 협찬을 하려 했고, 오늘의 리스트에 화이트가 없었어서 화이트를 찾았지만 셀러에 협찬할 만한 화이트와인이 없었던 관계로 샴페인을 협찬해 보았습니다.


벨라비스타와는 또 다른 결의 꼬순내. 드디어 그 동안 마시던 컨벤셔널한 샴페인에서의 그 느낌으로 넘어왔습니다.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지만 그 향을 은근하게 풍겨 낸다고 할까요. 볼랭저 특유의 느낌이라고 할지 모를, 정제된 사과향이 피어오릅니다. 앙드레 끌루에에서도 사과향이 올라오는데, 이게 확실히 달라요. 앙드레 끌루에의 사과향이 사과의 겉면으로 눌려 올라오는 사과즙의 느낌, 마치 착즙기로 짜낸 듯한 사과즙이라고 한다면 볼랭저의 사과향은 과실의 속살만 걷어내고, 사과를 아삭, 하고 깨물었을 때 혀 끝으로 느껴지는 과육의 바스러지느 구조감까지 끌려온다고 할까요. 갓 만든 식빵에서의 고소함에 더불어 청포도의 과실감까지 올라오고, 이렇게 여러 향들이 있음에도 단단하고 강인한 캐릭터를 유지합니다.


이러한 구조감을 유지하는 것은 의외로 미네랄리티입니다. 마셨을 때, 약간의 패트롤인가? 싶을 정도로 미세하게 딸려오는 금속질의 향취가 마치 총구가 겨누어졌을 때 코가 시큰하게 느껴지는 느낌마냥 긴장감을 부여합니다. 군 복무를 하신 분이라면 아시겠지만 총기 수입을 할 때, 공기중에 은근하게 떠도는 금속질의 향기가 있거든요. 그리고 사격 훈련을 하고 나서 떠도는 총연과, 훈련장으로 들고 올 때와 다르게 미지근하게 달궈진 총열에서 느껴지는 기묘한 긴장감. 아, 내가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병기를 들고 있구나. 에서 올라오는 묘한 엄숙함. 호흡이 조절되어야 탄착군 형성에 도움이 된다는 가르침을 떠나서, 한 발, 한 발을 쏘기 전에 차분히 숨을 가라앉히고... 멈추고, 속으로 하나, 둘, 셋 을 센 다음 숨을 내쉼과 동시에 방아쇠를 당기는.


목넘김 이후를 보자면, 사격을 마치고 고개를 들어 산자락 바람을 쐬는 듯한 풀내음, 혹은 미묘한 개울 내음과 재지한 분위기로 넘어갑니다. 목 안쪽에서는 요거트의 느낌인데, 칼로 깎아서 냉장고에 보관한 사과를 잘 보면 다면체의 면이 아닌 모서리에서부터 갈변해서 올라오는데 그 갈변한 모서리에 혀를 가져다 댄 듯한 뭉근함이 같이 곁들여집니다.



네 번째 와인은 프리외르 로크, 뉘 생 조르쥬 프르미에 크뤼 비에이 비뉴 2007 빈티지 (Prieure Roch, Nuits Saint George 1er Cru Vieille Vignes 2007) 입니다.


릿지828의 오너이신 김수호님께서 분명 소소한 와인을 협찬해주신다고 하셨는데, 제가 모르는 새에 [소소하다] 라는 단어의 뜻이 많이 바뀌었나 봅니다...소고기를 제곱번 먹을 수 있다 라는 뜻이라거나... 소울음소리를 내면서 영접해야 하는 무엇인가라거나...


첫 노즈는 말, 당나귀. 뜬금없지만 말이건 당나귀이건 노새이건 그리 크지 않은 농경용 동물이, 흙이 잔뜩 묻은 쟁기를 이고 땅을 갈아엎는 느낌입니다. 혀의 미뢰 사이사이르 갉작갉작 갈아내주는 선명한 느낌. 바짝 영근 과실의 산미감이 또렷하지만 동시에 산미의 뾰족함이 아닌 시각적 이미지에서의 선명도로 치환되면서, 밀레의 이삭 줍는 여인들과 고흐의 감자 먹는 사람들이 동시에 떠오릅니다. 두 그림 중 하나를 고르라고 하면 밀레 쪽을 들겠습니다.


두 번째 느낌은 잘 익은 석박지입니다. 맛있는 석박지는 이미 하나의 반찬이 아니라, 그 자체가 들어가야만 하는, 아 곰탕 먹었다! 라는 문장의 완결성에 필수불가결한 요소이죠. 와인에서 웬 김치냐! 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김치와 장류의 느낌은, 꼬릿하고 들큰하면서 짭짜름하고 텁텁한 총체적인 향기가 연상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입에서는 딸기. 의외로 딸기인데 심지어 산딸기, 베리류의 뉘앙스가 치고 들어가면서 참 신기한 것이, 분명 와인은 압착하여 만드느 것임에도 불구하고 압착되지 않은 과실의 느낌이 살아 있었습니다. 딸기를 한입 베어물면 겉 부분의 미끈하고 오돌토돌한 느낌을 살짝 지나가야, 점차 하얀색으로 바뀌어가는 그 속살에 이빨이 닿을 수 있는 것처럼요. 일고여덟살쯤 되는, 눈이 크고 그 눈으로 쉴새없이 어른들을 골탕먹일만한 - 그러면서도 본인이 크게 혼나지는 않을 수 있는 - 장난을 궁리하는 스마트한 꼬맹이가 연상됩니다.


잠시 지나볼까요. 그랬던 꼬맹이는 어느덧 여기저기 흙을 뒤집어쓰고 있지만, 거기다가 슬렌더하다고나 할까요. 그래서 남자애일까 여자애일까 고민되는 부분도 분명 있지만 머리에는 적당한 크기의 장미꽃을 한 송이 꽂고 있는, 흑발의 여성으로 성장했습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중(실사화 아닙니다.) 뮬란이 연상되네요. 


마실 수록, 산미감과 함미감 사이로 약간씩 드러나는 싱거움은, 마치 자갈과 흙 사이에서 잘 뒤적거리다 보면 보이는 금속질의 무언가를 연상시킵니다. 병에서 따라 마시는 와인이라기 보다는, 금속질의 뚜껑을 거쳐서 뿌려지는 향수에 근접했다고 할까요. 와인과 향수 사이의 무언가가 있다면 거기에 가장 근접할 듯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지막 남은 와인을 한 입에 털어넣고 꿀-꺽 하는 순간, 돔 페리뇽 수도사님이 했다는 그 문장, 나는 지금 별을 마시고 있다. 라는 문장이 연상됩니다. 커다란 별을 한 입에 꿀꺽하는 충만감을 느꼈습니다.



다섯 번째 와인은 마세토 1999 빈티지 (Masseto 1999) 입니다.


메를로의 풍미. 강건하고 적당한 근육질의 젊은 남성. 로크가 슬렌더인 여성상이었다면 마세토는 캡틴 아메리카를 연상케 하는 듬직함이 나타납니다. 동시에 굉장히 프랑스 와인이다, 보르도 느낌이다 싶고요.


입에서는 놀라운 것이 오일리함이 치고 지나갑니다. 물음표를 띄우기도 전에 보랏빛, 진한 보랏빛 빌로드가 흘러가서 덮지만 처음의 그 희한한 오일리함은 신기했지요. 메를로 100%라고 알고 있는데도, 까베르네 프랑을 섞은 것 마냥 기묘한 굽이침이 올라옵니다. 메를로라는 긴 여울에 중간중간 까베르네 프랑이라는 바위들이 있어, 미각이 굽이치고 포말을 일으키게 만든다고나 할까요. 뜬금없지만 몽쉘(네, 그 과자의 몽쉘 맞습니다.)을 먹을 때, 속 부분은 혀로도 눌릴 수 있을 정도로 포슬하니 들어가지만 가장 겉 부분의 초콜릿 껍데기가 식감을 주는 것 같은 느낌으로, 메를로가 대세이지만 프랑이 들어가서 주는 듯한 변주가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럼에도 남성성은 어디 안 간다고, 연상되는 것은 잘 구워낸 파이 위에 '나는 단백질이요' 라고 외치는 토핑을 그득그득 얹은 모양새입니다. 혹은, 비프 웰링턴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왠지 마세토만 마시면서 헬스를 한다면 근손실이 안 올거 같다는 느낌까지도 들어요 (물론 그럴 리 없다는 건 알고 있지만요 +_+)


다만 아쉬운 점은, 1999 빈티지이고 디캔팅까지 했음에도 굳건하게 그 안쪽을 보여 주지 않습니다. 석재로 만든 든든한 성벽 위로, 다크 퍼플 색상의 깃발을 여럿 꽂아서 펄럭거리는 느낌. 물론 시간을 조금 더 두니 살며시 녹아내리면서 다크 초콜릿에 크림을 얹은 듯한 수준으로 넘어는 갔지만, 너무 어린 와인을 너무 일찍 열었나 싶은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지금 정도 수준에서도 잘 만든 보르도 블렌딩처럼 까베르네 쇼비뇽과 까베르네 프랑의 느낌을 같이 살려 주면서, 적정한 당미와 고소함을 보여 주는데... 만일 1980년대의 굿 빈티지를 지금 마신다면 어떨까? 라는 욕심이 들었던 한 잔이었습니다.



여섯 번째 와인은 페러 보베, 셀렉시오 에스페샬 비니예스 베예스 2015 빈티지 (Ferrer Bobet Seleccio Especial Vinyes Velles 2015) 입니다.


미국 피노누아, 그것도 러시안 리버 밸리의 남쪽에서 만든 피노 누아가 연상되는 달큰함이 코를 반겨줍니다. 동시에 스페인 템프라니요의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하지만 놀라운 점은 당미가 주우욱 흐르다가, 호흡의 마지막 쯤에서는 삐죽! 하고 솟아오릅니다. 달다달다달다다네........하고 늘숨을 마무리지으려고 하는 그 순간, 들숨을 멈출 때의 그 순간, 마치 길다란 동굴을 지나서 첫 햇살을 눈에 정면으로 담았을 때의 반짝임이 있습니다.


입에서는 음... 첫 느낌은 여전히 달달합니다만 중간에 산미감이 어필하고, 목넘김 이후에는 들큰하게 당미가 올라옵니다. 뜬금없이 연상되는 건 황야. 아주 어릴 적, 부모님은 그 당시 벤허를 비롯하여 굉장히 오래된 영화들을 즐겨 보셨었더랬지요. 기본이 70년대 영화들. 그 어느 한 장면에서, 관을 끌고 다니는 총잡이가 있었더랬습니다. 페러 보베는 그 총잡이(아마도 주인공이겠지요? 관을 끌고 다닌다는 기믹일 정도라면)가 아닌, 젊었을 적에는 나름 잘 나가는 총잡이였으나 이젠 한 마을의 늙은 보안관이 되어 있는 조연 정도의 느낌입니다. 외관으로는 덩치가 큰... 마치 디즈니 애니메이션 중 모아나에서의 추장님 같은 느낌입니다. 그 추장님이 나이들면 덜 촐싹거리고 더 진지해지겠지요? 그런 느낌입니다. 


그럼에도 이건 느낌이 그렇다는 거고 맛은... 2015년 빈티지 어디 안 갑니다. 어리고 달고 나중에 타닌이 뿜뿜하여 텁텁하죠. 오래 묵힐 목적으로 만든 것 같지는 않다는 느낌도 듭니다.



일곱 번째 와인은 뉘통 보노이 부르고뉴 샤르도네 레제르바 (Nuiton-Beaunoy Bourgogne Chardonnay Reserva) 라고, 병 뒷면의 한글 레이블에 붙여져 있습니다만... 칠링하다가 레이블이 날아갔다고 합니다(!)


잔을 린스하느라 그대로 받았더니 로제 색상이 되어버렸고 (심지어 저거 마세토 잔...) 입에서는 레드 마시다 화이트 넘어와서 우와 좋다 고소하다 ~ 하는 느낌과 달달하네 ~ 라는 뉘앙스만 남았던 기억입니다.



마지막 와인은 깔리자 MST 2018 빈티지 (Caliza MST 2018) 입니다. MST는 MSG 같은 거냐? 라는 느낌이지만, 품종명 (메를로, 쉬라, 템프라니요) 의 앞글자를 따서 만들었다고 하네요 +_+


허브 계열의 향기가 뿜뿜하고 적당한 짠맛도 감돌아서, 아르헨티나 말벡인가? 싶은 느낌이 있습니다. 물론 뒤잇는 특유의 달달함은 어 이거 템프라니요 섞인거같다! 싶지만요.


진한 보랏빛의 컬러에서 연상되듯이 딱 그러한 느낌이 있습니다. 여기쯤 오니 술을 많이 마시기도 했고, 잔에서도 이향 저향이 다 올라오는 상황이라 그저 마지막에 마시기 무난했다 라는 기억만 남아 있습니다.



마지막은 떼샷. 깔리자 코르크를 왜 저기 놓고 찍었나 싶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