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ienz의 모두가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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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0년부터 와인 유튜브를 시작한지라 (https://www.youtube.com/channel/UC_TPhiQv3W1tLu3HnNh1teg) 블로그 포스팅을 하지 않았던 차였는데, 아주 오래간만에 와인 모임을 하게 되어 이에 대한 후기를 끄적끄적 올려봅니다.

 

첫 번째 와인은 샴페인 필리조 에 피스 누메로 3 (Champagne Philizot et Fils No. 3) 입니다. 

 

가성비 좋은 샴페인으로 알고 있었고, 누메로의 의미는 블렌딩한 품종의 차이라고 들었던 기억입니다. 누메로 1은 샤르도네 100%이니 블랑 드 블랑이라고 해도 될 것 같고, 누메로 2는 피노 누아와 피노 뫼니에이니 블랑 드 누아, 그리고 누메로 3은 위의 3개 품종이 모두 블렌딩된 셈이지요.

 

청사과의 느낌이 팡팡 치고 들어오길래 약간의 불안함이 있었지만, 갈변하여 아삭 보다는 사그락거리는 홍사과의 뉘앙스로 변화하면서 적절한 크리스피함도 보여주었습니다. 다만 묵지근하게, 둔중하게 가라앉는 탄산감은 샴페인과 까바, 혹은 샴페인과 다른 스파클링 와인 사이의 경계선상에 있는 무엇인가 같다는 아쉬움을 주었네요.

 

입에서 나쁘지 않게 표현되던 산미감은 잎새가 뾰족하니 날카로운 식물을 지켜보는 느낌이었습니다. 예상보다 상당히 드라이했고, 당미감이 낮다 싶은 느낌이었는데 이는 온도가 살풋 올라가면서 어느 정도 해소되었습니다.

 

사과로 시작했으나 청포도, 배, 자몽의 뉘앙스로 마무리가 되었고, 그 중에서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한 것은 자몽이었습니다. 

두 번째 와인은 샴페인 알베르 르브뤙 블랑 드 누아 엑스트라 브뤼 (Champagne Albert Lebrun Blanc de Noirs Extra Brut) 입니다.

 * 약간 남은 샴페인을 매장 직원분께 병째로 증정하였기에 사진이 없어, 첫 번째 와인의 측면사진으로 대신합니다.

 

어둑하고 쿰쿰한 향, 그리고 은근하게 차분한 뉘앙스가 첫 번째 와인과는 확연하게 다르다는 점을 어필합니다. 단순하게 쿰쿰한 것으로만 지나갔다면 고만고만한 블랑 드 누아이겠거니 했을 건데, 그 사이사이로 비스킷, 혹은 브리오슈나 토스트의 느낌을 툭툭 던져주는 모양새에서 생각보다 재미있기도 하고 괜찮다 싶었네요.

 

다만 입 안에서는... 여기에서도 당미감이 쪽 빠진 깔끔한 모습을 보여 주면서, 이게 엑스트라 브뤼여서 그런 것인지 첫 번째 와인이랑 같은 잔에 받아서 헷갈리는 것인지 살짝 고민하게 만듭니다. 물론 입술이 닿는 부분은 다르게 해서 마셨지만요. 오죽했으면 앗 드디어 나에게도 코로나가 온 것인가? 코로나의 증상이 맛을 못 느끼는 것도 있다고 했는데? 라는 생각까지도 했었습니다.

 

특이한 점으로는, 같이 나온 랍스터와 곁들였을 때 순간적으로 굉장히 비릿한 맛이 풍겼습니다. 마치 레드 와인이랑 숭어회를 곁들인 것 같은 느낌에 당황하면서 물로 입을 헹궜을 정도였네요. 일시적이긴 했지만 그 뒤로도 순간순간 비릿함이 치고들어오는데, 처음만큼의 충격은 아니었어서 다행이었습니다. 잔 컨디션이랑 이런저런 요소가 복합된 이벤트였겠지 하고 넘어갔구요.

세 번째 와인은 말도나도 파 빈야드 2019 빈티지 (Maldonado Parr Vineyard 2019) 입니다.

 

말도나도의 경우 겁나게 많이 구매하신 모 형 덕분에 이래저래 따라다니면서 체감상 한 10번은 마신 거 같은 느낌인데, 그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아주 전형적인 미국 샤도네이라는 생각입니다. 꽁스가르드에 포도를 납품하는 곳이라는 설명과 별개로 아 이건 미국 샤도네이구나, 그런데 좀 치는구나 라는 생각. 

 

방앗간 같은 고소한 느낌과 버터리함이 포도덩굴마냥 어울렁더울렁 어우러지는데, 여기까지만 했다면 그냥 흔한 미국 샤도네이였겠지만 그 뒷맛을 산미로 확 잡아채면서 뒤끝있는 무언가, 혹은 뚝심있는 무언가 라는 어필을 제대로 합니다. 물론 이제 갓 3년 지난 (정확하게는 3년도 아니지) 터라 보여주는 모습 자체는 어리지만, 그래도 이런저런 색감을 보여준다는 측면에서 잠재력이 있는 와인.

 

입에서는 산미감이랑 미네랄리티가 어우러지는데, 여기서의 미네랄리티는 롬바우어 같은 장르에서의 바다 뉘앙스라기보다는 금속질, 혹은 돌멩이를 혀로 핥으면 이럴 거 같다 싶은 느낌입니다. 그러면서도 은근하게 탄수화물의 느낌, 크루아상 생지와 구워진 크루아상 사이의 어딘가의 느낌이랑 아직 덜 영글었지만 이런저런 꽃향과 과일로 만든 술이야! 를 주장하는 마무리까지. (참고로 최근 과일맛 안나는 와인을 마셔본 터라 개인적으로는 과실감이 반갑습니다)

 

다만 문제는 이게 말도나도라는 와이너리의 스타일인지, 말도나도 와이너리가 위치한 나이츠 밸리의 특징인지는 아직도 구분을 못 하겠다는 점입니다. 지난 2017년 나파밸리에 방문하였을 때 점심 차 들렀던 레스토랑에서 주문하였던 화이트 와인이 바로 이 나이츠 밸리에서 만든 와인이었는데, 와 땡잡았다 싶을 정도로 맛있었기 때문이지요. 나이츠 밸리의 여러 와이너리들을 겪어보기 전까지는 계속 의문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네 번째 와인은 샤또 드 루, 시크리트 드 쉬스티 2015 빈티지 (Chateau de L'ou, Secret de Schistes 2015) 입니다.

 

랑그독 루씨옹의 쉬라 와인으로, 메인 와인인 씨네 쿼 넌이랑 '유사한' 느낌을 받을 수 있는 와인이라는 소개와 함께 향을 맡았는데, 마시기 전에 씨네 쿼 넌을 미리 받았던지라 (잔 브리딩) 비교감이 너무 여실하게 드러났습니다.

 

잔에 따를 때부터 씨네 쿼 넌보다 더 깊고 진한, 그러면서도 뭔가 깊이감이 아쉽다 싶은 보랏빛이었는데(깊고 진하다면서 깊이감이 모자란 건 뭐냐고 물으신다면 대답해드리는 것이 인지상정... 이 아니라, 색감 자체의 진하기로서는 더욱 진했지만 그 색감이 나오는 과정에 있어서 마치 유화로 치면 대여섯 번 이상 덧칠하면서 끌어낸 깊이감이 없이한두 번 칠하고 만 것 같은 아쉬움이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코에서는 너무 직선적이고 둔탁한 느낌의 자두와 블랙베리 향. 분명 호주 시라즈와는 다르게 생글생글 사랑스러운 허브향도 있고 (대놓고 유칼립투스 같은 느낌이 아니다.) 섬세하게 손질한 정원 같은 뉘앙스도 주는데...... 어디 가서 꿀리지 않을 와인이라는 건 알겠는데 대진운이 너무 안 좋았다는 느낌이고, 심지어 씨네 쿼 넌이랑 다른 쉐잎의 잔으로 받았다는 점도 비교에 있어서는 마이너스 요인이었습니다.

 

입 안에서는 굉장히 시골 마을스럽다는 정취. 순간적으로 내추럴와인인가? 할 정도의 토속적이고 전원적인 느낌을 주는데 그러한 감각을 큼직한 단맛과 과실이 갖고 있는 신맛으로 쓸고 내려갑니다. 가볍게 목으로 넘기기보다는 입 안에서 둥글둥글 굴리면 더 맛있는 와인. 그러다 보면 코로 느꼈던 허브향이 타닌감이랑 잘 어우러들면서 입안에 자리하는 느낌. 안주 없이 마셔도 괜찮을 거 같다는 좋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마지막 모금까지 넘길 때까지도 도회적인 인상은 전혀 못 받았다는 점이 특이했는데, 이는 비교군이 씨네 쿼 넌이라서 그랬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다섯 번째 와인은 밀러 패밀리 옵틱 비엔 나시도 빈야드 시라 블록 49 2019 빈티지 (Miller Family, Optik Bien Nacido Syrah Block 49 2019) 입니다.

 

비엔 나시도는 씨네 쿼 넌을 비롯하여 여러 와이너리들에 포도를 공급하는 지역이며, 밀러 패밀리는 흔히들 그렇듯이 이제 우리들만의 와인도 만들어 보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러던 차에 조이 텐슬리와의 협업을 통해 옵틱 라인업을 만들게 되었다고 합니다.

 

떼루아라는 측면에서는 씨네 쿼 넌과 극히 유사한 곳이고 첫 향에서는 거의 비슷한 향을 뿜어냅니다. 앞서의 시크리트 드 쉬스티에서도 그러했지만 시라 특유의 깊고 진한 보랏빛 과실감. 그리고 쉬스티에서는 너무나도 빠르게 전원풍으로 넘어갔다면 그래도 여기서는 도회적인 뉘앙스, 금속과 콘크리트와 아스팔트가 반겨 주는 영역이라는 느낌까지는 비슷하게 따라붙었지요. 하지만 블렌딩에 있어서 확실하게 차이가 있습니다. 마실 때에도 이야기했지만 서울에서 출발해서 대전까지는 같이 내려갔는데, 하나는 전라 하나는 경상으로 갈라진 듯한 차이. 조금 더 강건하고 스모키하면서 묵직한, 남성적인 질감은 마치 미국 서부시대를 다룬 다큐멘터리에서 장화에 진흙을 묻힌 채 흙길, 바윗길을 걷는 근육질 남성을 연상케 합니다.

 

이러한 점은 입에서도 마찬가지인데, "첫 맛" 은 씨네 쿼 넌이랑 극히 유사하지만 그 뒤로는 많이 갈라집니다. KTX를 타고 용산에 같이 내렸는데 하나는 상행선 1호선, 하나는 하행선 1호선을 타는 듯한 차이. 입에서 별다른 변화상을 주지 못하고 (이는 시라 특유의 맛에 집중했다는 관점에서는 강점이 될 수 있습니다.) 직선적으로 주욱 벋어가는 폼새는 좋았지만 복합미에서는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여기서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건, 비교군이었던 씨네 쿼 넌은 2012 빈티지였고 옵틱은 2019 빈티지였기 때문에 복합미를 논하기에는 이 역시도 대진운이 좋지 않았다... 유스 대표랑 국가대표랑 같이 경기하는 느낌이었다 라고 하겠습니다. 

 

참고로 옵틱의 경우 앞서 말도나도를 받았던 잔에 받았는데, 린스를 하였다고 했지만 말도나도의 느낌이 영향을 미쳤을 수 있습니다.

여섯 번째 와인은 씨네 쿼 넌 스탁 시라 2012 빈티지 (Sine Qua Non Stock Syrah 2012) 입니다.

 

깊이 떨어지지만 절대 가라앉지 않고, 상승 혹은 복귀가 예정된 다이빙. 숨을 깊이 들이마시면 비강이 넓어지는 듯한 검푸른 서늘함이 감싸는데, 그 뒤를 따스한 감각이 쓰다듬어 줍니다. 벙글, 하고 웃음이 피어나게 하는 향.

 

전 악장에 있어 플럼을 베이스로 블랙 커런트가 반주하는 연주 위로,

 

허바시우스가 반겨주는 1악장은 아주 잘 만든 보르도 블렌딩인가 하는 느낌도 주면서 자연스럽게 라뚜르를 연상시킵니다.

 

이후 스모키함이 인사하는 2악장에서는 어딜 프랑스로 가십니까 선생님 저는 미국에 있습니다 를 어필하고,

 

아 뭐야 오크 터치 뿜뿜하는 미국인가 싶을 때 슬쩍 치고 들어오는 레드 베리류의 3악장은 어허 제가 보기보다 많은 것들이 블렌딩된 와인입니다? 라고 그 화려함을 뽐냅니다.

 

마지막인 4악장에서는 화려함의 피날레로 지금까지 쌓아온 향들이 한꺼번에 올라오면서 불꽃놀이와 같은 인상으로 마무리짓고, 불꽃놀이의 마지막은 공기 중에 남아있는 화약향이듯 잔잔하게 그리고 산미감이 점차 올라가면서 새큼한 꿏과 같은 뉘앙스로 마무리됩니다.

 

향이 저러한 변화를 보여주는 동안, 입에서는 2악장 어느메에서 3악장으로 넘어간 초입에 마지막 모금을 마셨습니다. 옵틱과의 비교점으로는 3악장과 4악장의 화려함과 섬세함, 마치 옵틱이 낮에 보는 도시의 모습까지만 따라했다면 그 도시의 야경까지 덧칠한 경험을 했다는 점이 되겠고 쉬스티와의 비교점으로는 애당초 쉬스티는 도시로 이어지는 톨게이트도 통과하지 못했다, 애당초 도시로 들어갈 생각이 없었고 도회지의 느낌을 전하기보다는 전원마을의 정취를 전달했다 라고 하겠습니다.

 

안 그럴 거 같은데 희한하게도 여성적인 이미지, 그러나 강건한 여성의 이미지로 마무리되었고 앨리자베스 1세 여왕의 초상화가 떠올랐습니다. 16세기 영국의 왕정을 상징하는, 그러나 주변국과 다르게 남자가 아닌 여자로서 왕이었던. 강건하면서 섬세하고, 절대적이면서 디테일하였을 것 같은 모습.

일곱 번째 와인은 스미스 앤 훅 카버네 쇼비뇽 2017 빈티지 (Snith & Hook Cabernet Sauvignon 2017) 입니다.

 

심지어 이 뒤로 한 병 더 마셨지만, 여기서부터는 테이스팅의 영역이 아니라 드링킹의 영역이었던 관계로 별다른 기억은 없습니다 +_+ 하지만 둘 다 꽤 괜찮게 맛나게 마셨던 느낌이니까... 좋지 아니한가 라고 생각해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