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ienz의 모두가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

오래간만에 포스팅을 하려다 보니 그간 마셨던 와인들이 있어, 하나씩 올려야 안 까먹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른 포스팅하고는 다르게 와인의 경우 한번에 여러 병을 마시면, 각각의 병들이 가지고 있는 색채와 향미를 표현하려 노력하다 보니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시간이 너무 잘 가더라고요. 그렇기에 시간을 내어 자리에 앉아야 포스팅을 하니 미루게 되는 악순환이지 않은가 싶습니다.



첫 번째 와인은 사진은 없지만(볼트 스테이크 하우스에서 콜키지 관련한 아규먼트가 조금 있었고, 이에 급히 공수한 업장 와인이라서 그런지) 뵈브 암발 크레망 드 부르고뉴 라 그랑 꼬뜨(Veuve Ambal, Cremant de Bourgogne La Grande Cote) 입니다.


업장에서 바로 꺼내온 것이라 그런지, 혹은 다른 업장에서 빌려 왔다고 하신 뵈브 끌리꼬 잔에 받아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크레망임에도 불구하고 적절한 산미와 볶은 보리에서 올라오는 여리여리하면서도 자기 색감을 확실히 가지고 있는 곡물향이 피어난 후, 점차 꿀과 패션후르츠 계열의 단맛으로 넘어갑니다. 테이블의 공간이 많이 여유가 없어 급히 마셨어서 아쉬웠지만(잔도 바로 가져가셨고) 아카시아꿀보다는 잡화꿀에 가까울 정도로 뒷맛이 달달하게 흘러갔고, 그러다 보니 마지막에 털어넣은 모금에서는 살짝 거칠게 올라올 수 있는 단내에서 야기된 씁쓸함까지 남았네요. 스파클링 와인으로 식전주를 삼으면서, 동시에 너무 크리스피하지 않은 아이를 원한다면 나쁘지 않은 선택이 될 것도 같았습니다만 저는 같은 가격이라면(업장가 10만 원) 차라리 조금 더 보태서 다른 샴페인을 마시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혹은 아예 안 마시거나요.


첨언하자면 다른 곳에서 빌려왔다고는 하지만... 제가 받은 뵈브 끌리꼬 잔에는 투명 테이프(아마 보관용 혹은 포장용으로 보이는)가 두 군데나 남아 있었고, 이는 병당 5만원을 받으면서도 콜키지를 테이블 당 2병까지만 허용하는 레스토랑의 정책과는 너무나도 동떨어진 아마추어리즘이지 않았나 싶었습니다. 스파클링 혹은 샴페인을 하나도 팔지 않는 가게라면야 그럴 수 있겠지만, 공식 홈 페이지의 메뉴에 보면 페리에 주에 벨 에포크 매그넘을 필두로 하는 쟁쟁한 샴페인들이 리스트업 되어 있거든요.



두 번째 와인은 이 날의 메인 와인인 샤또 라플뢰르 1986 빈티지(Chateau Lafleur 1986) 입니다.


잔에 따라낸 그대로 향을 맡자마자 은은하게, 그러나 강렬하게 피어올라오는 미네랄과 뒤를 받쳐주듯 살포시 안겨드는 초콜릿향, 민트초콜릿인가 싶을 만큼 빠르게 이어지는 여러 종의 허브 느낌까지. 잠시 허브향으로 코를 개운하게 해준 후, 뒤이어 피노 누아에서 느껴질 법하던 버섯향과 낙엽향, 그리고 땅이다 싶은 흙내음이 함께 합니다.


잘근잘근 보드랍게, 그러나 유랴이 적거나 끊기지 않고 꾸준하게 흐르는 시냇물가에 자그마한 송이의 들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고, 어디선지 모르게 한두 잎씩 흘러 떠내려오는 큼직한 장미꽃잎이 그 향을 담뿍 내쉬고 있습니다.


살짝 시간이 지나니 뒷맛으로 라임과 같은 산미가 상큼하게 올라오는데, 점차 강렬하게 나타나는 금속질의 미네랄리티와 어우러져 마치 알루미늄 창틀에 끼워진 유리창을 연상케 합니다. 아까의 시냇물을 따라 한두 걸음 걸어가다 보니 어느 새 앞에 드러난 1층짜리 수도원. 자잘한 돌계단으로 이루어진 입구와 둥그런 창문, 그리고 종탑까지는 아니지만 입구 부분에 돋우워 지어진 다락층은 건물의 균형을 해치지 않은 채 하늘과 땅을 이어 줍니다. 자칫하면 자연과 어우러지지 못할 수 있는 건물이지만, 전반적으로 라임스톤처럼 밝게 지어진 만듦새에서 들판에 살짝 옆으로 앉아 있는 여성의 모습도 함께 떠오릅니다.



세 번째 와인은 샤또 라플뢰르 2008 빈티지(Chateau Lafleur 2008) 입니다.


코에 가져다 대자마자, 미세한 허브향이 먼저 반깁니다. 동시에 단단하게 잠긴 느낌. 10년이라는 시간은 와인을 열어제치기엔 한참 모자랐던 것이 틀림 없습니다. 향마저 단단히 잠겨 있는 앞에, 하릴없이 코를 킁킁거리니 마치 이미 도망친 지 3일은 되었을 토끼굴 입구에 엎드려 있는 여우의 느낌이네요.


차마 입에도 대지 못한 채 기다려 보고, 스월링해 보고...


다시금 맡아보니 그나마 조금씩 미네랄리티가 먼저 드러납니다. 그나마도 비릿할 정도의 묵지근한 향기는 세월의 흐름이 켜켜이 내려앉은 철문.


업장 사정 상 더 이상 기다릴 수가 없어 입에 넣기 시작하니, 쟁글거리는 허브향과 사이사이 숨겨져 있는 산미, 그리고 새파랗게 아직 여물지도 않은 잔디의 느낌이 함께 춤을 춥니다. 결국 이 날의 라플뢰르 2008 빈티지는 거대한, 오래된 철문으로 가로막혀 있으며, 그 앞에는 세월의 흐름이라도 보여주듯 전나무와 각종 잡초들이 무성했던 그러한 모습이었습니다. 그저 철문 사이로 살풋살풋 드러나는 향기만 좆았던 아쉬움이 남네요.



네 번째 와인은 레디가피 2003 빈티지(Redigaffi 2003) 입니다.


뜬금없을 수도 있지만 첫 향기로는 수박이, 그리고 뒤이어 숲향이 올라옵니다. 아울러 중간 정도 되는 크기의 꽃봉오리를 가진 이런저런 꽃들이 둥실둥실 떠오르구요. 점점 익숙해져 가니 사르르 헤쳐지는 꽃들 뒤로는, 역시 뜬금없지만 굉장히 전통적인 향취. 마치 시골 어드메에 가서 옛 방식으로 만들어 낸 간장이랄까 고추장이랄까 싶은 전통적이고 토속적인 향취가 납니다.


살짝 입에 머금어 보니 이탈리아 와인 특유의 것이라고 할지 모를 산미가 훅 들어오는데, 아까 라플뢰르 86에서 느낀 것과는 궤를 달리합니다. 라플뢰르의 산미가 산뜻하고 사뿐사뿐하다면 레디가피의 산미는 산미임에도 묵직한 무게감을 가지고 있었어요. 마치 포도송이에서 포도르 따서 입에 넣을 때 선뜻선뜻 느껴지는 열매 본연의 느낌에 더 가깝다고 할까요.


타닌감이 있긴 했지만, 입술을 지나칠 때에나 존재감을 알렸지 혀에 닿아 혀 중간쯤으로 미끄러들 때쯤이면 어느 새 다크 초코릿 텍스쳐를 메인으로 합니다. 그리고 목넘김즈음 따라붙는 미네랄리티가 존재감을 어필하고요.


자체로도 충분히 훌륭했고, 오륙 년 더 예전 빈티지라면 어땠을까 싶은 기대감을 품게 하는 맛이었습니다.



다섯 번째 와인은 빌까르 살몽 엑스트라 브뤼(Billecart-Salmon Extra Brut) 입니다.


한 잔인가 받았던가? 희한하게 기억에 남지 않네요. 사진이 있는 걸 보면 마시긴 했을 건데 희한한 일입니다 ㅠ_ㅜ 메모를 까먹을 만큼 취했던건가 싶기도 하고...아마 제가 아는 빌까르 살몽이라면 토스티하고 이스티한 느낌에, 자잘한 꽃 느낌이 이리저리 튀어오르는 모양새일 겁니다.



여섯 번째 와인은 까스텔리 에스테이트, 일 리리스 (Castelli estate, Il Liris) 입니다.


호주 샤도네이라고 들었던가 싶은데, 입 안에서는 있느 대로 어린 뉘앙스가 퐁퐁 솟아오르면서 동시에 캘리포니아 남쪽 지바의 샤도네이가 보여주는 참깨향, 고소함, 버터리한 유질감이 솟아오릅니다. 그러면서도 어려서 그런지 묵직하게 가라앉지 않고, 살짝살짝 플라워리한 느낌도 잘 살리고 있구요. 칠링을 잘 해서 마시면 어지간한 미국 샤도네이보다는 더 가성비 좋게 마실 수 있을 듯했습니다.



일곱 번째 와인은 셰노리오 데 산 비셴테 2007 빈티지(Senorio de San Vicente 2007) 입니다.


향신료의 스파이시함이 코를 쿡 찌르고, 뒤이어 유칼립투스 같은 쨍쨍한 허브향이 솟아오릅니다. 품종이 템프라니요라고 알게 됐는데, 빈티지만 보고 가르나챠라고 생각했었네요. 자두즙 같은 맛에 건자두로 만든 잼 같은 과실감 넘치는 스타일과, 나무가 고생을 좀 했는지 비에이 비ㅇ뉴마냥 오래된 나무의 포도에서 느껴질 법한 그윽함도 살풋살풋 가지고 있었습니다.


여덟 번째 와인이자 마지막 와인은 위 사진의 오른쪽인 마운츠 카버네 쇼비뇽 2015 빈티지(Mounts Cabernet Sauvignon 2015) 입니다.


산 비셴테를 받은 잔에 그대로 받아서인지, 유칼립투스 향과 허브향은 거의 그대로 올라오고 거기에 민트초코 뉘앙스가 가미됩니다. 허니버터칩도 아니고 입 안에서 단맛과 짠맛이 쿵짝쿵짝 나타나서 물음표를 띄운 채 입을 헹구고 다시 마셔 보았으나, 아니나다를까 과실감에서 우러나는 단맛과 바다짠내 같은 미네랄리티 - 비릿하긴 한데 무겁게 가라앉지 않고, 그렇다고 금속질의 쨍하게 찔러오는 느낌도 아닌 물탄 요오드 같은 느낌 - 가 묘하게 어우러지는 것이 희한하게 조화가 잘 맞는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물론 방어도 먹고 육전도 먹고 했던 입이라서 덜 헹궈져서 그렇게 느꼈을 수도 있겠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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