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리움미술관 - 세밀가귀 : 한국미술의 품격 (1)
오늘 포스팅할 내용은, 일전 K-HOSPITAL 박람회에 다녀오는 길에 바로 들렀던 리움미술관에서 관람했던 전시회입니다. 리움미술관은 우리나라의 유명 미술관으로, 그간 여러 기획전을 할 때마다 나름의 인지도를 가지고 있었는데요, 이번 전시는 개인적으로 평가하기에 리움미술관의 격을 한 차원 끌어올리는데 성공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코헤이 나와. <픽셀 - 중첩된 사슴>]
두 마리의 박제 사슴에 구슬로 장식하였습니다. 사진으로는 직접 봤을 때의 신기함이 반 이상 감소하니 한 번쯤 보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심지어 티켓팅 하기 전, 입구에 장식된 것이기 때문에 무료로(!) 보실 수 있습니다.
그룹 임직원 무료입장이라는 감사한 혜택을 받고, 입구로 이동합니다. 기획전이었기 때문에 별도의 공간에서 전시하고 있었습니다.
[왠지 사진을 찍어야 할 것만 같은 입구]
들어가서 찍은 사진이 엄청 많고, 블로그 포스팅 용량에 초과될 수가 있는 관계로 몇 개 사진만 추려서 올리도록 하려 합니다. 아래는 작품들 사진입니다.
[청자진사 연화문 표형주자. 함부르크미술공예박물관 소장]
병목 부분에 사람의 형상을 투박하게 꾸며 내고, 연꽃잎을 슥슥 그려 내었습니다. 백미는 마치 빗살무늬 토기마냥 세밀하게 그어낸 사선들입니다. 연꽃봉오리의 잎맥을 형상화한 것일까요. 사선으로 혹은 거미줄마냥 그려진 선들은 마치 지문을 보는 양, 혹은 인간사의 번뇌를 보는 양 괜시리 마음을 착잡하게 만듭니다.
[다뉴세문경]
서긍은 나전칠기를 보고 세밀가귀라 칭했다고 하지만, 다뉴세문경이야말로 세밀이라 할 만하지 않을까요. 아이들에게 태양을 그리라고 하면 동그라미와, 둘레를 삐죽삐죽으로 감싸서 그리곤 합니다. 이 정도의 섬세한 공정을 거친 작품이라면 고귀한 신분, 혹은 신성한 존재를 부각하고자 하였으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태양과도 같은 무늬를 넣은 이유는 하늘을 숭배하는 것을 형상화한 것이 아니었을지. 종이에 대고 그리라고 하여도 한참 걸렸을 문양을 거푸집으로, 그것도 현대의 정밀금속가공기술이 아닌 당시의 기술력으로 만들어내었다는 것에 경의를 표합니다.
[금동초심지가위]
처음에는 무엇일까 싶었고, 설명을 보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촛불의 심지를 잘라내는 가위로서, 현대의 윅 트리머 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동그란 초에 맞추기 때문에 끝부분이 동그랗게 되어 있고, 심지를 잘라 낼 때 일반적인 가위를 쓸 경우 불씨가 바닥으로 떨어질 우려가 있으니 둥글게 테두리를 하여 실용성도 겸비하였습니다. 커다란 사진으로 보시면, 손잡이 부분에 정교하게 새겨진 문양에 감탄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심지가 담기는 부분에도 문양이 이어짐을 알 수 있습니다. 허투로 할 법한 부분마저도 꼼꼼하게 마무리하는 장인 정신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정덕5년명 사리장엄구.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사리호 에 사리를 봉안한 후, 사리함에 재차 봉안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사진으로는 커다랗게 보이지만, 실제로는 사리함의 경우 성인 손바닥보다 더 작은 면적입니다. 하지만 뚜껑 부분의 사면이 아래로 부드러이 휘어져 있는 곡선이라던가, 빼곡이 그려져 있는 문양과 글자에 대해서는 존경심마저 듭니다. 분명 종교적인 목적으로 사용되었을 것이니만큼, 제작자는 깊은 공경과 봉양의 의미를 담아 한땀한땀 정성을 들였으리라 생각합니다. 자신이 하는 일에 그만큼 정성을 담을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봅니다.
[금동 불감.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커다란 저택으로 보이지만, 높이가 30cm도 되지 않는 금동 작품입니다. 그 내부에 저리도 찬란하게 불상을 새겨내었다는 것에 순간적으로 큰 아름다움을 느꼈습니다.
[은제도금 경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처음에 보자마자 느낀 것은 영화감독의 의자(디렉터스 체어)였습니다. 두 번째로 떠오른 것은 김기덕 감독이 에르메스로부터 디렉터스 체어를 받았다는 것이었구요. 아마 언제인가의 부산영화제였을겁니다. 당시 제가 사진으로 접했던 디렉터스 체어는 비록 옆으로 접히고 펼쳐지는 것이었고, 이 작품은 의자가 아닌 경가(거울받침)이긴 하지만, 만일 이러한 경가를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이 디렉터스 체어를 만들었다면 얼마나 아름다웠을 것인지를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가히 용상에 버금가는 찬연함이 아니었을까요.
[청자양각 연판문 주자. 브루클린박물관 소장]
쉬이 접하기 어려운 작품들을 따로 중앙에 모셔둔 모습에서, 우리나라의 슬픈 역사를 읽었노라 말하면 애국자연한 듯이 보일 겁니다. 전 그저 그런 일개 중생인지라 슬픈 역사라기보다는 분노의 역사를 읽었습니다. 쉽게 표현하면, 마음껏 보고 싶은데 볼 수가 없으니 이것이 홍길동의 마음이 아니었겠는가 라는 것이지요.
바로크 시대의 옷자락을 보는 듯한 연꽆 무늬 끝의 알알들을 보노라면, 이 주자를 디자인한 사람이 얼마나 시대를 풍미할 수 있었을지 아쉬움이 남습니다. 이런 재능을 갖고 있는 사람이 이 시대에 태어났다면 어땠을까. 혹은, 우리나라에서 났음에도 멀리 브루클린에 가서 모두의 시선을 사로잡을 것을 생각하면 우리나라에서 천재들은 박제된 표본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인가. 진정한 Outlier 가 나타날 수는 없는 것인가 라는 아쉬움도 같이 느꼈다고나 할까요. 영국 왕실에서 사용했다고 하여도 전혀 무리 없을 단아한 디자인임에 틀림없습니다.
[나전 국당초문 경전함. 도쿄국립박물관 소장. 일본 중요문화재]
여자친구가 지금 네덜란드에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하면 지난 2007년 KLM 항공을 이용하여 스키폴 공항에서 경유했었던 기억밖에 없었는데, 나전 국당초문 경전함 중 하나가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고 하네요. 이로써 암스테르담 이라는 도시에 대한 새로운 추억이 만들어졌습니다.
섬세하고 반복적인 무늬를 보면, 고작 알파벳을 반복할 뿐인 루이뷔통은 얼마나 편안하게 장사하는 것인지 새삼스레 짖궂은 생각이 듭니다. 적어도 명품이라면 이 정도는 되어야지. 그러다 보니 짝퉁(!)이 많이 나오는 게 아닐까요. 다른 브랜드에 대한 장난스러운 반응을 이끌어낼 만큼, 이 작품은 아름다웠습니다.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최고급 시계에서, 정교한 투르비옹이 움직이기 시작하는 순간의 모습을 볼 때의 느낌이라고 할까요.
[청동은입사 운룡문 향완. 국보 제 214호]
그저 감탄밖에 안나옵니다. 지금 당장 사용하여도 전혀 부족함이 없을 웅장하고 장엄한 문양과 형태는, 적어도 종묘제례 혹은 그에 준하는 국가적 행사 때에나 사용하도록 스스로를 강제하고 있는 듯합니다. 자체로 가지고 있는 품격에 걸맞는 장소와 시간에서 사용하여 달라는 듯한 느낌이지요.섬세하나 강렬하게, 거침없으되 절제하여 뻗은 선들과 투박하게 표현한 몸체는, 진부한 표현이지만, 당장에라도 날아오를 듯한 역동성을 나타냅니다. 전신의 근육이 금방이라도 터져나갈 듯 꿈틀거리는 모양을 평면으로 구현해낼 수 있다는 것에 놀라움을 느낍니다. 그러면서도 얼굴과 눈동자의 순박함은 우리네 정성(情性)을 나타내는 것이 아닐런지요.
[나전대모 국당초문 화형합. 보스턴미술관 소장]
사진 찍은 사람의 손가락이 잘못한 사진입니다. 라고 적으면 끄덕끄덕 하실 수도 있겠지만, 지금 이 사진은 엄청나게 확대해서 찍은 사진입니다. 위위 작품(나전)의 한조각 한조각들이 이 작품의 한조각이랑 크기가 비슷하다고 생각하시면 축척이 대략 나올 듯합니다. 대략 지금 저희가 쓰는 둥글 인주? 정도 크기라고나 할까요. 이리도 아름답게 만들어진 작품을 볼 수 있다는 건 참 좋은 시간입니다.
리움미술관에서는 전시품 중 일부에 대해 고화소 카메라로 촬영한 후, 360도로 볼수 있도록 만들어 두었는데요. 이 작품의 경우 적당히 확대하여 캡쳐하면 바로 그게 현대미술작품이라고 해도 인정할 만큼 화사하고 아름다운 모습이었습니다. 확대한 부분에 따라 다르겠지만, 고흐의 해바라기 가 연상되는 느낌이었습니다.
올리지 못한 다른 사진들은 다음 번에 포스팅하도록 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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