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리움미술관 - 세밀가귀 : 한국미술의 품격 (2)
지난번 포스팅에 이은 포스팅입니다. 티스토리 용량제한으로 사진을 많이 올리지 못하여, 부득이하게 나누어서 올리게 되었네요.
[다리작명 은제 팔찌. 국보 제 160호]
지금 당장 어디 내놓아도 손색 없을 은제 팔찌입니다. 은팔찌 라는 표현이 수갑을 의미하는 짖궂은 표현이 되어 버려서 씁쓸한데요,(사실 수갑이 은으로 만든 건 아니잖아요 +_+ 스테일리스 스틸이라면 또 모를까) 팔을 휘돌고 나가는 용 무늬가 호방함과 섬세함을 동시에 느끼도록 하여 줍니다.
[청자상감동채 모란문 매병.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아래는 아치 고흐의 해바라기를 보는 듯한 유화풍의, 위는 가톨릭 신부의 면포마냥 정제미를 지닌 무냥이 혼재되어 있습니다. 정면의 꽃봉오리는 마치 당장이라도 피어올릴 듯한 힘찬 모습입니다.
[청자상감 당초문 병. 야마토문화관 소장]
우리 유물에 참으로 실례되는 말이겠으나, 아마 [원피스] 의 작가 오다 에이치로는 이걸 보고 악마의 열매를 그린 게 아닐까요. 지켜보면 지켜볼수록 빠져드는 매력이 있는 문양은, 무조건적인 곡선만이 아니라 중간중간 강렬한 직선을 포함하고 있어 더욱 빠져나오기 어려운 듯합니다.
[청화백자투각 모란당초문 호.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투각법 이라 하면, 우리가 초등학교나 중학교 때 배운 양각을 조금 더 깊게 들어간 것입니다. 도드라져야 하는 부분 외 배경을 모두 파는 것이 양각이라면, 투각은 파냄의 강도를 더하여 뚫어내는 것이죠. 우리말로는 뚫새김 이라고 합니다. 지금이애 3D 프린터 이런 걸로 출력해버리면 되지만, 그 당시에 위와 같이 도자기를 만들어내려면 굳기 전에 모두 파내야 하는 작업이었다는 것인데, 얼마나 어려운 작업이었을지 짐작도 되지 않습니다.
[보상화문 전. 국립경주박물관 소장]
하...영어로 Tile 이라고 덜렁 적어둔 걸 보니 화가 날 지경입니다. 지금으로부터 1,300여년 전에 돌판 하나하나마다 저리 아름다운 문양을 정으로 쪼아내어 만들어낸 것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감동입니다. 게다가, 중앙의 무늬만이 아닌 네 모서리의 문양을 보면 같은 문양 전끼리 엮었을 경우 일치하는 모양새였으리라는 것인데, 그걸 모두 고려하면서 만들어야 했다는 점에서 전율마저 느껴집니다. 왠지 머릿속으로는, 단순히 2 × 2 형태의 문양이 아니라 조금 더 복잡한 형상이지 않았을까... 저 정도의 문양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정사각형이라는 형태에 얽매이지는 않았을 듯하다는 근거 없는 상상마저 펼쳐집니다.
[나전 단화금수문 거울. 국보 제 140호]
거울이라고 합니다. 왼쪽 중상단의 산자락 같은 모습, 거기에서 스리슬쩍 흘러내려오는 물줄기인지 구름줄기인지 길인지 모를 끝에는 귀여운 발톱을 앙증맞게 내세우로 있는 동물의 상이 보입니다. 그 몸체에는 미세하게 실금이 새겨져 있어, 털옷 같은 질감을 세세히 살려 주고 있습니다. 시선을 아래로 빙 둘러 오른편으로 넘어오니 같은 아이가 반겨 주고 있구요, 그 끝자락엔 역시나 부드러운 우리네 산세의 산 모양이 슬며시 나타납니다.
거울 하나로, 전래동화의 한 장면과도 같은 스토리를 담아 낸 작품입니다. 유명 성당 천장의 프레스코화가 이런 느낌일까요? 그 시대의 사람들은 우리네가 이제 잊고 있는 동화를 이 거울에 부여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머니가 딸에게, 혹은 남편이 부인에게 이 거울을 건네면서 속삭였을 지혜의 목소리 혹은 사랑의 지저귐을 상상해 봅니다.
[나전대모 국당초문 삼엽형합.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소장]
이 블로그를 보시는 분이 계신다면, 모바일 데이터 등이 허락한다면 꼭 이 사진만큼은 크게 보실 수 있기를 권장 드립니다. 그야말로 시대의 명품, 그 시기의 패션에 있어서 최첨단을 달리는 작품이 아니었을까요. 그리고 이러한 작품을 빚어내는 장인들은, 마치 지금 우리들이 이탈리아 가죽장인이나 스위스 시계장인들에게 보내는 찬사와 인정만큼, 아니 그 이상의 대접을 받던 사람들이 아니었을까요.
어느새인가, 너무나도 순간적이고 파편적인 것들에 시선을 빼앗기고 있는 우리네 모습이 떠오르면서 입 안이 깔깔해집니다.
[나전 국당초문 화형반. 개인 소장]
개인 소장이라고 합니다. 네. 개인이 소장하고 있다고 합니다. 소장한 개인이 참 부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저는 오히려 옛날 사람들이 더 부럽습니다. 지금 위 작품을 소장한 사람이, 어떤 용도로 쓰고 있을까요. 설마 믹스커피 타서 마시는 용도로 쓰고 있지는 않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하지만 수백년 전, 우리네 조상들은 위 작품으로 일상을 영위했을 겁니다. 다기를 올렸을 수도 있고, 술잔을 기울였을지도 모르겠지요. 과일을 올리는 용도였을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한껏 여성스러운 자태를 보았을 때, 현대 여성의 콤팩트와 같이 갖은 화장도구를 올려두는 용도였을지도요.
[마지막 사진. 칠보산도병. 클리블랜드미술관 소장]
칠보산을 그린 병풍입니다. 사람들이 엄청 많았지만, 어떻게 기다려서 이런 타이밍을 잡아 찍었습니다. 보는 순간 이러저러해서 찍어야지 가 아니라, 어떻게든 이 모습을 남겨 두고 싶었습니다.
이렇게, 리움미술관 - 세밀가귀 : 한국미술의 품격 전에 대한 포스팅을 마치겠습니다.
훌륭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하여 준 리움미술관 관계자 모두에게 깊이 감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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