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ienz의 모두가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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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9월의 마지막 날이자, 일년 중 3/4 가 지나간 날입니다. 의미를 담기에 충분한 그날, 훌륭하신 분들과 즐거운 모임을 가졌습니다. 고등 학교 1학년 혹은 2학년 시절의 어느 지점엔가, 아마 은사님의 추천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만 저는 다음과 같은 책을 1회독 하게 되었더랬지요.


교양 : 사람이 알아야 할 모든 것 (디트리히 슐바니츠 저)


저 책의 어느 한 구절에선가, [살롱] 에 대해 다루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17세기 프랑스의 궁정문화로서, 귀부인들의 후원을 전제로 한 소규모 모임이었을까요. 한편에서 볼테르의 문구를 읊조리면, 반대편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경구로서 답하는 지적 유희의 모임. 오늘 모임을 이름붙이자면, 서정이 흐르는 살롱의 한 편린이지 않았을까 합니다.



[기억하는, 오늘의 세 번째 와인. 프랑스 와인입니다.]



[샤또 라세그(Chateau Lassegue), 2001년 빈티지]


첫 모금을 마시는 순간 눈 앞에 그려진 것은 루브르 박물관의, 특징적인 유리 피라미드였습니다. 탄탄한 구조와 절제된 조형미의, 그야말로 온 몸으로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그것이었지요. 프랑스 와인이라는 설명을 뒤로 한 채, 혹시나 프랑스 라는 힌트 아닌 힌트를 듣고 나서 머릿속이 그려낸 선입견이 아닌가 싶어 다시금 입을 헹구고 음미해본 향기는 벌꿀집이었습니다. 오래된 수령의 나무, 그러나 뿌리가 극히 깊어 그 질박함을 담고 있는 나무라기보다는 파르라니 생명력을 발산하고 있는 푸르른 나무에 깃들어 있는 풍성한 벌꿀집. 벌꿀의 유무는 중요하지 않으나, 그 자체로서 생명력이 넘쳐나는, 갓 지어진 밀랍향이 그득한 벌꿀집의 연상을 이끌어내는 향이었습니다. 화사하고 우아함을 한껏 끄집어낸 듯한 맛에 일순간 압도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살풋이 열대의 열기가 올라오는 듯한 느낌도 받으면서, 잔 속에서 계속 휘저어주면서 맡는 향기는 켜켜이 새로운 향이었습니다. 신선한 정취를 계속 느낄 수 있었다고나 할까요.


입 안에서는, 마치 우유를 살짝 타서 마시는 물마냥 리치하고 부드러운 느낌으로 넘어갑니다. 그러나 우유처럼 느끼하거나 기름지지 않고, 한방울 한방울이 살아 숨쉬는 듯한 맛입니다. 슬며시 후추? 처럼 스모키한 맛도 올라오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는 진한 베리향입니다. 과육이 툭툭 터지는 듯한 맛으로 입안을 한껏 감싸줍니다.


아무래도 술인 만큼, 당연하게도 마신 뒷맛은 탄닌일지 탄산일지 모를 특유의 느낌이 혀를 꼬옥 조여줍니다. 그러나 금방 풀어헤쳐지는 그 모습에서, 한번쯤 당돌하게 들이대 보지만 금방 풀어지고 마는 연인의 사랑스러운 모습을 연상하게 됩니다. 침샘을 한껏 자극한 뒤, 화아 하니 풀어 없어져버리는 화려함이라고나 할까요.


그러나 극히 아쉬운 점은, 몇 모금을 마셔 보고 혹시나 해서 음미해 봐도, 가장 끝의 맛은 잔잔한 그것이라기보단 여느 쇠락한 성당의 공허한, 색칠 하나 되어있지 않은 회반죽 벽이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무언가 가필을 하고 싶지만 이미 그것으로 완성이 되어 있는, 그래서 더 아쉬움에 발길을 멈추게 만드는 맛입니다.



[오늘의 네 번째 와인입니다. 칠레 와인입니다.]



[옆면의 그림이 특이하여 한컷 더 찍었습니다.]



[마이 제너레이션 90(My Generation 90), 2012년 빈티지]


라세그 를 마신 다음 이 와인을 마셨을 때 첫 느낌은 [소박하고 달다] 였습니다. 그 달콤함이 디저트나 꿀 같은 것이 아니라, 무우나 당근을 오래 씹었을 때 느껴지는 달근달근한 달콤함이랄까요. 라세그 가 도회지의 세련된 모습을 표방한다면, 단 한 모금만으로 마시는 사람을 중소도시의 순박함 속에 끌어다놓을 수 있는 와인입니다. 저 멀리 농부들이 갓 수확한 포도를 들고 활짝 웃을 때 거침없이 권할 수 있을 듯한 와인입니다.


냉이된장국에서 냉이를 한가득 떠서 먹을 때의 그 쌉싸래하고 달큰한 맛을 유감 없이 느낄 수 있는 와인이었습니다. 소박하되 절대 단출하지 않은, 한땀한땀 만들어내서 겉보기엔 투박해 보일지라도 장인의 눈으로 볼 때에는 그 나름의 절제미와 화려함을 엿볼 수 있는 가죽 장식 같은 느낌일까요. 이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지 할 수 있는 장인의 배포와 술배? 가 느껴집니다.


새콤달콤한 맛과 베리류 과실의 향취를 적당히 담았고, 마시면 마실 수록 동네 어귀에 졸졸 흐르는 시냇물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마을의 젖줄이 되어 물레방아도 돌려 주고, 아이들의 놀이터도 되어 주는 꿀 같은 시냇물일까요.



[오늘의 마지막 와인입니다. 스페인 와인입니다.]



[세뇨리오 디 오르가즈(Senorio de Orgaz), 2013년 빈티지]


사실 두 번째로 마셨던 와인이자, 마지막을 장식한 와인입니다. 첫 모금은 청량하고 맑은 느낌이 초원에서 뛰노는 어린 사내아이의 모습을 연상케 하지만, 점점 빠져들수록 굴곡지고 억센 계곡물의 흐름을 느끼게 만들어 줍니다. 마냥 가벼운 아이라고 생각했으나 어느새 훌쩍 커버린 자식에 대해 부모가 갖는 복잡한 마음이 아닐런지요. 나름의 그윽한 흥취를 느끼도록 하여 주고, 뒷맛의 느낌은 대략적으로나마 세월의 향을 담아보려고 하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새콤하니 콧속을 자극하면서 묘한 긴장감을 주는 모양새인데, 그 긴장감이 과도한 탄산이나 억지스러운 알코올 때문이 아닌 본능적인 긴장감입니다. 마치 투우 경기를 관람할때의 느낌, 혹은 경마에 적으나마 베팅을 하고 나서의 즐거운 긴장감이라고나 할까요.



너무나도 맛있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