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ienz의 모두가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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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는 YES24 에서 가져왔습니다.]


인문학을 자연과학에 대비되는 단어로서 사용한다면, 병원과 인문학이 서로 같은 자리에 앉는 일은 상상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병원을 찾는 사람이 단지 의사와 환자만이 아니라 사무직원, 각종 부대시설직원, 혹은 환자의 보호자와 환자를 병문안하러 오는 사람들, 심지어 병원 식당 밥이 맛있어서 부러 찾아오는 주말의 등산객들까지 합하게 된다면 인문학이라고 하여 병원과 떨어뜨려 놓는 것은 그닥 적절한 처사가 아닐 듯합니다.

책을 대여한 날은 한참 전이었지만 읽기를 차일피일 미루고 있던 차에, 일원역 근처 모 병원에 제출한 원서가 서류통과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에 이번 주 금요일로 내정된 면접 이전에 한 번쯤 병원의 분위기를 보고 싶다는 생각에 어제 두서없이 병원을 찾았고, 다녀온 후로 자연스럽게 이 책을 읽기 시작하였습니다. 작년 여름 삼성증권 인턴십 합격 발표 이후 출근하기 전에 한 번 지점을 방문했던 것을 돌이켜보면, 그리고 그룹연수 이후 배치된 지점에도 미리 방문해봤던 것을 생각한다면 전 무언가 일을 앞두곤 꼭 그 곳을 찾아가보는 습성이 있는 듯합니다. 마치 예술가처럼 스윽 훑어봐도 그 곳의 정서와 취향을 파악해내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뭔가 한 번 와봤던 곳이라는 안도감을 심어주기 위한 것일까요.

일요일이라 한산한 병원 로비를 지나 게시물과 영상물을 보면서 점심을 먹으러 지하로 가려는데, 흰 가운을 입은 의사 선생님과 - 제가 인턴과 레지던트, 심지어 남자 간호부와 의사를 구별할 만한 능력이 되질 않아 의사 선생님으로 통칭하겠습니다. - 한눈에도 북방민족 같이 보이는 외국인의 대화가 있었습니다. 슬쩍 흘려 들었던 터라 의사 선생님께서 "Do you mean that..."이라고 하시는 것밖에 못 들었지만, 지나가는 척 하다가 슬쩍 돌아보니 두 분이 어디론가 걸어가셨더군요. 캐리어에 짐을 잔뜩 끌고 오셨으니 단순한 환자분은 아니신 듯 하고, 아마 병문안을 오신 듯했습니다. (식당을 찾는 것이었다면 저랑 같은 방향으로 왔겠지요.)

병원이 의사와 환자라는 선형적 관계만이 아니라는 생각을 한 건 이때부터였습니다. 선형적이었다면 의사는 환자를 치료하고 환자는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떠나면 되는 것이지요. 하지만 우리네 인생사라는 게 그렇게 쉬운 것만은 아니라, 분명 치료가 필요한 질환인데도 환자 보호자의 강변에 어쩔 수 없이 환자를 병원 밖으로 보내드려야 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 심지어 병원 식당이 맛없어! 이러면서 항의하는 분과의 민원도 있을 것입니다. 전남대학교 측에서도 이러한 점, 즉 선형적이지 않고 필연적으로 갈등이 유발될 수 있는 관계공간으로서 병원이 존재함을 인지해서인지 병원 내부에 주 1회씩 인문학강좌를 마련하여 문화와 갈등, 통섭에 대해 강좌를 진행하였고 그들 중 17개 꼭지를 편집하여 출간하였습니다.

헤겔의 변증법부터 시작해서 예술사, 개인과 개인 자신의 갈등 등 분명 얼치기로나마 인문학도인 입장에서도 술술 이해하고 받아들이긴 힘든 난이도의 글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책을 읽는 내내 제 머릿속에 맴도는 것은 태생부터 병원이었고 벌써 설립한 지 이십 년이 가까워오는 종합병원임에도 안에 병원의 냄새는 지극히 미미했었다는 기억과, 모 은행에 들어서면 느낄 수 있는 직원들의 건조하고 형식적인 미소와 인사보다는 한 외국인의 요청을 해결해주기 위해 열심히 - 그 분은 저보다 영어를 훨씬 더 잘하셨을테니, 그분에겐 열심히가 아니라 자연스럽게였을지도 모르겠네요 - 영어를 쓰셨던 하얀 가운에 대한 기억은 인문학이 이렇게 딱딱하고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동시에 갖게 해 주었습니다. 일요일이라 진료하지 않는 분과들을 의자를 이용해 막아둔 저 너머에서 고단한 몸을 누이고 휴식을 취하시던 청소부 아주머니들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리고, 그저 찰칵찰칵 사진만 찍는 곳이라 여기던 영상의학부에서 매주 새로운 증례를 디스플레이하고 이에 대해 어떻게 진단을 내리겠느냐? 라고 물음으로서 의사들의 실력을 함양하고자 노력하는 모습이 떠오릅니다. 이 모든 것이, 가슴에 대는 순간 부르르 떨게 만드는 청진기의 차가움 뒤에 있는 의사의 심장 박동 소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러한 감상은 병원의 갈등에 대한 문단에서 구체화되었지요. 위에도 살짝 언급했지만 환자의 생명이라는 가치와 환자의 자유의지라는 가치는 때에 따라서는 충돌할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법에 따른다, 혹은 민주적인 의사결정에 따른다는 것은 절차적 정당성은 될지언정 본질적인 답이 될 수는 없겠지요. 책에서도 역시 그에 대한 답을 주지는 않습니다. 아마 정확한 답이란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르겠어요.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의사란 참 어려운 직업이라는 겁니다. 법규 때문에 분명 소견상 힘들어질 환자를 병실 밖으로 나가게 해야 할 때의 그 무력감과 좌절감이 어떨지. 반대로, 분명 진단상 올바른 처치를 해주고 있음에도 자기를 볼 때마다 불만을 한가득 가지고 있는 환자의 얼굴을 보면 기분이 어떨지. 의사란 약간 조물주와같은 입장이 될 것도 같아요. 신이 있다면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느냐! 라고 항변하는 사람에게, 사실 심모원려가 있어서 그렇다 라고 말해줄 수도 없고 거 참.

병원에서 있을 기회가 주어진다면, 따뜻하고 안온한 병원을 만드는 게 힘을 보태고 싶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