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ienz의 모두가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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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일 출근을 마치고, 3일부터의 연휴를 시작하기 위해서 저녁에 와인을 무얼 마실까 고민했습니다. 송스루 형식의 뮤지컬을 찾는데 레 미제라블이 유튜브에 있길래 영상을 재생하면서, 어제 남긴 로버트 몬다비 샤도네이를 한잔 쭈욱 들이켜니 피노 누아 생각이 절실해지더라고요. 끌로드 뒤가 2009 빈티지를 따려다가 지금 따기엔 왜인지 아쉬워서, 다른 와인을 열었습니다.



와인은 도멘 레슈노 뉘 생 조르쥬 프리미에 크뤼 "레 다모데" 2011 빈티지(Domaine Lecheneaut Nuits Saint Georges Premier Cru "Les Damodes" 2011) 입니다.


[와인서쳐 해평가 94,134원]


잠실 롯데백화점 지하 1층에서 베리떼 르 데지르를 구입할 때 같이 구입했는데, 사진의 저 정도 레이블이면 이건 당연히 레이블 불량 아니냐고 DC를 요청했으나 제값을 다 받았던 충격적인 이야기... 롯백 와인 담당하시는 분이 이 포스팅을 보신다면, 이 정도 레이블이면 상식적인 선에서 봐도 불량인데, 이런 경우 본사 차원에서 직원의 재량권을 주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임의로 레이블을 훼손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지만 그건 본사에서 각 지점에 물건을 넘길 때 검수를 해야 하는 부분이고요.


옆의 잔은 가브리엘 글라스 골드 에디션인데, 이건 다음 기회에 포스팅하도록 하겠습니다. 



캡실이 이렇게 오그라들도록 보관되어 있었다는 사실... 이건 제 셀러의 문제가 아니라, 전적으로 롯데백화점 측의 문제입니다. 다만 율라지(Ullage. 프랑스어로는 율라지 에 가깝게 발음되고 영어로는 얼러지 에 가까운 발음인데, 율라지 라고 적는 것이 맞지 않을까 싶네요.) 의 상태를 보니 보존은 잘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결국 레이블'만' 불량인 건데... 일해라 롯데야.



잔에 따른 뒤 찰칵. 어차피 다 마실 생각이라서 푸어링은 1도 신경 안 쓰고 따랐습니다.


코르크에서부터 고양이, 삵괭이, 비릿한 피비린내, 동물적인 향이 뿜뿜 올라옵니다. 아울러 비트로 만든 피클처럼 새초롬하고 달큰쌉쌀한 향기가 있네요. 우아한 자태를 가진 고양이 한 마리를 보는 듯했습니다. 병으로 향을 맡아 보니 이건 또 세상 복닥복닥한 시골 마을의 꽃집 같은 느낌이네요. 여기저기 마당에 흙이 뒤집어져 있고, 온갖 들꽃에 풀잎에 고양이 강아지들이 여기저기 노닐다 간 듯한 분위기. 그러면서도, 왜인지 모르게 매혹적이고 유혹적인 느낌이 끼쳐올라옵니다.


잔에서의 향기로는 아이가 조물조물 만들어낸 뒤 여러 꽃과 잎사귀로 치장한 모래성의 느낌이 연상됩니다. 땡그라니 여리고 단단한 모습에서는 아직 한참 어린, 남녀마저도 구분되지 않을 듯한 아이의 모습이 그려지고요. 한약재 같다고 할지 모를 특유의 꿉꿉하고 고릿한 향에, 모닥불에서 이리저리 피어올라오는 불티마냥 여기저기 두드리는 미세한 기포감이랄지 탄산감이랄지 모를 향기에 마시려고 따랐음에도 잔에서 시간을 더 주고 싶어집니다.


입 안에서는, 입안을 살금살금 채우는 산미와 타닌감이 은은하게 조화를 이룹니다. 물컵에 물을 채운 뒤 가운데에 물감을 떨어뜨리면 서서히 퍼져나가듯 부드럽게, 입안 전체로 퍼뜨려지는 느낌에 편안함이 느껴지네요. 섬세한 느낌이 마치 기포가 세밀한 샴페인을 마시는 듯한 느낌도 있습니다. 중반 이후로는 중간중간, 연못위로 톡 하고 무언가 튀어오르듯 입안을 간질이는 느낌이 있고 목 뒤로 넘어갈 때는 바삭거리는 황금 빛 낙엽, 늦은 수확기에 느낄 수 있는 훗훗한 느낌과 동시에 따라오는 미세한 공허감이 따라오며, 목 안쪽에서는 무지갯빛 흙맛이 솟습니다. 분명 흙의 질감은 맞는데, 동네 놀이터에서 보는 그런 흙이 아니라 다종다양한 색상으로 이루어진 흙 같은 무엇인지 모를 균형감이 같이 올라오네요.


시간이 지날 수록 가죽향, 동물적인 느낌이 점차 살아나고, 버섯향과 흙향에 박하향, 바질 페스토에 라임을 넣은 듯하게 상쾌하면서도 녹진한 향이 어우러듭니다. 동물적인 느낌이나 가죽향 모두 강하게 올라오는 것이 아니라, 마치 책상에 앉아있는데 고양이 한 마리가 코 앞을 스쳐 걸어가듯 살며시 지나가는 뉘앙스가 참 마음에 들었습니다.


입안에서는 두번째 잔도, 세번째 잔도 아직 한참 어리다는 느낌. 2013년 이후 부르고뉴 루즈에서 느껴지는 듯한 여린 느낌이 그대로 살아 있습니다. 하지만 허브의 쌉쌀함과 흙의 녹진함이 묘하게 어우러지는 맛에, 최근 빈티지에서는 느끼기 어려운 섬세하고 얌전한 터치가 그래도 몇년 더 있었던 와인이라서 다르구나 싶었습니다.


끌로드 뒤가를 안 따고 갖고있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