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ienz의 모두가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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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 연휴 동안, 홀짝홀짝 혼자 마시기는 하는데 영 재미가 없어서 회사 선배님을 초대해서 같이 와인을 마셨습니다. 본래 한병을 나눠 마시려다가, 같이했던 영화 [사이드웨이] 가 끝나지 않아서 두 번째 와인을 열었고, 슈발 블랑 61년산을 콜라컵에 따라 마시는 마지막 장면에 흥취가 솟아서 원스 인 어 블루 문에 들렀다가, 재즈 흥까지 올라서 정식바에서 와인을 하나 더 마셨네요. 이렇게 둘이사 와인 세 병을 마시니 흥이 아주 좋습니다.



첫 번째 와인은 에머리터스 피노 힐 피노 누아 2014 빈티지(Emeritus Pinot Hill Pinot Noir 2014) 입니다.


[와인서쳐 해평가 62,887원]


현지 와이너리에서 46달러(세전. 그 동네 세금이 7.25 ~ 8% 정도 되던 듯하니 세금 포함해도 50달러 미만)에 구입했었는데, 와인서쳐에 보니 에머리터스 빈야즈(Emeritus Vineyards)에서만 팔고 있는데다가 가격이 한화로 62,865원입니다. 뭔가 굉장히 유니크한 와인을 마신 듯해서 기분이 살짝 좋네요.


코르크에서도, 병목에서도 고무나무의 느낌, 싱싱하고 억세고 푸르른 줄기, 하얗고 끈끈하고 싱그러운 수액이 가득 들어 있는 나무줄기의 싱싱한 느낌이 지배적입니다. 살짝 시간이 지나니 시라즈처럼 달큰한 초콜릿 뉘앙스도 올라오고, 뒤이어 약한 모카향도 감도네요.


잔에서는 청사과같은 파릇한, 아삭한 느낌이 포르르 올라오다가 뒤이은 흙햘과 가죽향, 가라앉아 있는 버섯향이 느껴집니다. 잔을 살짝 흔들어서 맡으니 잔잔한 호숫가에서 석양을 받듯 다사롭고 싱그러운 느낌이 코를 타고 도네요. 짭짤한 바다 같은 느낌에, 가죽향과 약한 타닌감이 아직 기다려 달라는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15분 뒤 다시 향을 맡으니, 조금 더 푸릇거리는 느낌에 상큼함과 새콤함이 벙글거립니다. 입 안에서는 짭짤하면서도 무언가 깉은, 뿌리 깊숙이에서 올라온 듯한 뉘앙스와 함께 왜인지 나무가 물이 없어서 고생한 듯한 느낌입니다. 소노마 카운티에 최근 가뭄이 이어졌다고 하던데 그 때문일지도 모르겠네요. 엺은 보랏빛 린넨으로 만든 커튼에, 떨어지는 햇살이 바스러지듯 사브작거리는 가벼운 느낌... 마시기에 참 좋은 피노 누아입니다. 미국 피노 누아 특유의 질척거리는 달큰함이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입니다. 깔끔하고 화사한 대리석과 시원시원하게 벋은 나무로 만든 단층 주택이 연상됩니다. 15분으로는 아직 다 열리지 않은 타닌의 쌉쌀함이, 초콜릿과 모카의 뉘앙스를 효과적으로 다독여주면서 부드러이 넘어가네요.


이걸 샀던 날 더 맛있게 느껴져서 샀던 다른 피노 누아가 더 기대되는 순간입니다.



두 번째 와인은 끌로드 뒤가 쥬브리 샹베르땡 2009 빈티지(Claude Dugat Gevrey Chambertin 2009) 입니다.


[와인서쳐 해평가 122,780원]


오픈할 때부터 녹진하고 깊숙한, 앞서 느꼈던 고무향이 뿜뿜 올라옵니다. 아주 오래 된 나무뿌리와 같은 향기, 여기저기 매달려 있는 한약재 혹은 허브와 그것들이 칸칸이 들어 있는 나무서랍, 철로 된 경첩과 문을 가로지르는 철제 보강재에 켜켜이 녹이 슬어 있는, 그래서 철가루 냄새가 나는 나무문이 떠오르네요.


가죽향, 비릿한 쇠 냄새, 그로 인한 미네랄리티, 박하향과 허브향, 코를 박고 있는 듯한 흙향과 그 촉촉함에서 올라오는 수분기, 어디엔가 자라고 있는 듯한 넓적할 것 같은 버섯의 향기.


미세하게 갈색이 섞인 검정색이 연상되면서, 빌로드처럼 가공된 가죽의 느낌이 납니다.


입 안에서는 허브의 느낌이 가장 강렬하게 올라오고, 뒤이어 흙맛과 약간의, 아주 약간의 끈끈한, 혹은 쫀득하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는 묘한 친근한 느낌이 있습니다. 미숫가루를 아주 맛나게 탄 다음, 가장 윗물만 떴다고 해야할지 혹은 막걸리에서 가장 윗물만 떴다고 해야 할지요. 그 특유의 감칠맛은 모두 가지고 있으면서, 물보다는 약간 질감을 가지고 있는... 그런 느낌입니다. 가죽의 뉘앙스와 약간의 애니멀틱한 느낌이 있는데, 전에 마신 레슈노 뉘 생 조르쥬보다는 확실히 약한 느낌입니다. 전체적으로 맑은 허브 스타일인 듯하네요.


시간을 두고 마시니 점차 푸릇푸릇 색채감이 올라오면서(그리고 영화도 중반부로 진행되면서) 그야말로 몰입감이 극대화됩니다. 싱그러운 풀과 나무의 강건한 생명력이 올라오면서 뒷맛으로는 쌉싸름하게 마무리되는, 딱 떨어지는 느낌.



세 번째 와인은 라 라시나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 일 디바스코 2006 빈티지(La Rasina Brunello Di Montalcino Il Divasco 2006) 입니다.


[와인서쳐 해평가 157,219원]


이미 와인 각 1병에, 재즈바에서 위스키 한잔 하고 갔던 거라 많은 기억이 없었다는 점이 아쉽습니다. 거의 2시간을 병 브리딩에, 잔에서도 나눠 먹고 했었음에도(11시 반 ~ 1시 반) 이렇게까지 기억이 없다는 점이 오히려 와인에게 참 미안해지네요.


열었을 때 아주 잘 가공된 가죽의 느낌. 가죽신발 혹은 가죽가방의 느낌이 훅 끼칩니다. 그런데 잔 안에서는 무언가, 뚜렷이 떠오르는 무언가는 그려지지 않았어요. 물론 참 맛있었고 그래서 술술 잘 들어갔던 와인인데 이렇게 특징이 잡히지 않는다는 점이 아쉽습니다. 나중에 다시 구해서 한번 더 마셔봐야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특이한 점으로, 와인서쳐에서는 브라질의 까사 도 비노 라는 샵을 제외하고는 한국의 와인보우 라는 샵에서만 판매를 하네요. 빈티지도 03, 04, 06, 07, 10 으로만 있고요. 거기에 07빈티지는 해평가가 43,422원이라는 극명한 차이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만 이건 판매처가 적은 탓도 있고, 매그넘 사이즈로만 판매한다는 것 때문에 가격이 이상한 듯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