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ienz의 모두가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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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도록이면 평일에는 술을 피하려는 주의입니다만(물론, 안 마신다는 건 아니기도 하고 + 회사 선후배들처럼, 오히려 주말에 만날 수 없는 혹은 만나기 애매한 경우라면 이야기가 다르지요) 그랑부시아를 마실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에 화요일에 와인을 마시기로 했습니다 +_+



첫 번째 와인은 뵈브 끌리꼬 2008 빈티지(Veuve Clicquot 2008) 입니다.


청초하고 우아한 아로마가 훅 끼쳐들어옵니다. 너무 원숙하지도, 너무 여리지도 않은 그야말로 시음적기! 라는 단어가 연상되는 그러한 아로마입니다. 입 안에서는 시트러스, 타임이라고 할까 싶은 허브향, 약간의 시 솔트가 느껴지네요. 전반적으로 맑고 밝은, 햇빛 떨어지는 해변가에 바삭이듯 부스러지는 파도의 끝자락과 그 편린을 하나하나 비추는 햇살 같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유질감이 슬며시 올라오는데, 와인을 무겁게 짓누르는 것이 아니라 든든하게 받쳐줌으로써 입 안에서의 균형감을 유지해 줍니다.


사실 뵈브 끌리꼬라고만 생각했다가 어 이거 예전에 마셨던 뵈브 끌리꼬의 그 맛이 아닌거같은데?? 싶어서 레이블을 봤더니 2008 빈티지이더라고요... 이래서 와인을 묵혀야 하는건가 싶었습니다.



두 번째 와인은 도미니끄 끌레리꼬 바롤로 페르크리스티나 2007 빈티지(Domenico Clerico Barolo Percristina 2007) 입니다.


바롤로의 전형적인 향취라고 해야 할지, 적당히 쿰쿰하면서 흙향, 버섯향, 사부작사부작 가라앉아 자연스레 흙으로 녹아들어가는... 잎맥의 흔적만 남아 예전에 잎사귀가 있었음을 알려주는 듯한 그런 흙에서 올라오는 녹진한 향이 올라붙습니다. 다만, 마치 가루약을 캡슐에 담듯 이러한 향취가 무언지 모를 둥그렇고 투명한 공으로 한꺼풀 싸여 있고, 거기에서 굉장히 현대적인 느낌을 뿜어냅니다. 


마치 귀농을 하고 싶은 정도는 아닌데 농사를 짓고 싶어! 라고 하는 사람에게 자그마한 주말농장을 권유하듯, 둘 사이의 균형을 찾아보려고 노력하는 느낌이 드네요. 마음에 안들거나 한 건 아니었지만,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조금 더 자연스럽게 내버려 뒀어도 좋지 않았을까 했습니다.


입술 위에서 벨벳처럼 부드러이 떨어지는 느낌과 풍부히 입 안을 채우는 질감에서 전 묘하게 프랑스 와인이라는 생각을 떠올렸지만, 목넘김 이후에 따라오는 은은한 장미향은 역시 바롤로라고 자기주장을 합니다.



세 번째 와인은 포데리 알도 꼰테르노 바롤로 그랑부시아 1996 빈티지(Poderi Aldo Conterno Barolo Granbussia 1996) 입니다.


앞서 페르크리스티나에서 느꼈던 바롤로 특유의 향취를 맡느라 들여마신 숨을 천천히 내쉬면, 흉식 호흡에서 자연스레 떨어지는 어깨와 결을 같이하면서 와인에 대한 감각이 내면의 어딘가로 침잠합니다. 빛 하나 보이지 않은 어딘가로 가없이 떨어져가는, 그러나 빈 공간으로의 낙하가 아닌 [무언가의 품으로] 빠져들어가는 느낌. 그야말로 [이것이 와인의 왕, 바롤로이니라] 라는 문구를 담담하게 알려 주는 듯한 느낌입니다.


점차 시간이 지나 향으로도 미세한 산미, 그리고 타닌감이 느껴지며 이것이 오히려 너무 급격히 빠져들지 않도록 현실감을 잡아주지 않나 싶었습니다. 하지만 묘하게 이러한 터치는 조금 현대적인 것이 아닐까 싶었네요. 순간적이지만, 영화 그래비티 에서의 '생명줄' 마냥 현대과학적인 이미지가 있었습니다.


입 안에서는 역시나 흙, 버섯, 약간의 타닌감, 트러플에서의 향취 등이 들불 번지듯 섞여들어오고, 마치 동굴 안에서 모닥불을 피우면 벽으로 그림자가 던져지듯이 이 모든 느낌이 압안 전체로 퍼져나가며 존재감을 과시합니다. 물론 격한 타닌감이라던가 하는 것이 아닌, 굉장히 온화하고 부드러이 입 안을 채워가는 품은 듬직한 참나무로 차근차근 지어낸 적당한 높이의 목조건물 같았습니다.



네 번째 와인은 지아니 갈리아도 바롤로 2012 빈티지(Gianni Gagliardo Barolo 2012) 입니다.


뜬금없을 수는 있는데, 은은한 허브향과 더불어 양파향이 살짝 올라왔습니다. 향기만 맡았을 뿐인데도 굉장히 어리다 싶었고, 그러면서도 뒤에 숨겨진 장기숙성에 대한 잠재력은 또한 명확하게 있었습니다. 잠재력은 살짝 스월링한 이후에 조금 더 명확하게 느껴집니다. 산미가 상당히 올라옵니다만, 처음의 산미감만 어느 정도 견디면, 이 후로는 상당히 부드럽게 향을 음미할 수 있습니다.


입 안에서는... 아까 느꼈던 산미감이 거짓이 아니라는 듯, 역시나 입을 꽈악 채워주고 뒤이은 타닌감 역시 입 안에 존재감을 과시합니다. 이어서 어디선지 모를 미세한 단맛과 짠맛이 약간의 물음표를 남기는데, 희한하게도 이 짠맛으로 인해 이탈리아 와인이라는 정체성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탈리아 본토에서 먹은 짭짤한 파스타 같은 기억이라고 할까요. 


어리고 시크한, 중성적인 매력을 가진 이탈리안 모델 같았습니다.



다섯 번째 와인은 샤또 부스까세 비에이 비뉴 2007 빈티지(Chateau Bouscasse Vieilles Vignes 2007) 입니다.


타닌감이 쨍쨍, 허브향과 다크 초콜릿향이 올라오는 게 순간적으로 신대륙인가? 싶었지만 특유의 마른 장작같은 헛헛함에서 차이가 납니다. 오래되어 이미 있는 대로 기력을 빼앗긴 토양에서 다시 한 번! 을 외치며 한번 더 길어올린 지하수 같은 특유의 헛헛하고 신산한 느낌... 하지만 은근한 과실향이 있어 그렇게 나쁘다 싶지 않습니다.


입 안에 쌉쌀하니 남는 타닌감과 허브향은 호불호가 갈릴 듯했으며, 마치 모래 벽돌로 만든 벽에서 느껴질법한 혹은 마른 건빵을 우겨넣었을 때의 퍼석함이 연상됩니다. 목구멍 안쪽까지 넘겨 삼켰을 때에야 저 멀리서 올라오던 단맛과 신맛은 와인을 잔에 두고 꽤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모습을 드러냅니다.


마침 같이 먹은 음식이 후식으로 나온 아이스크림이었는데, 이게 또 엄청난 시너지를 냅니다. 와인 자체가 메마른 나무와 같은데 유질 그 자체인 우유 아이스크림이 들어오니 입 안에서의 궁합이 아주 괜찮았네요.



여섯 번째 와인은 며칠 전에 마셨어서 단독샷도 안 찍은 샤또 부스까세 2009 빈티지(Chateau Bouscasse 2009) 입니다.


달큰쌉쌀한 허브초콜릿 향, 뒤이은 시트러스. 도네이션을 위해 살짝 공부한 바에 따르면 2007 빈티지는 따냐(Tannat) 95%에 까베르네 프랑(Cabernet Franc) 5%였고, 2009 빈티지는 따냐 65%에 까베르네 쇼비뇽(Cabernet Sauvignon) 30%, 까베르네 프랑 5%였나? 아무튼 까베르네 쇼비뇽이 꽤 들어갔었을 겁니다.


그래서인지 앞서의 와인에 비해 과실감이 더 올라오고, 타닌감도 살짝 가라앉은 게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접근성으로 보면 조금 더 좋지 않나 싶네요.